올해 한국 증시가 뜻밖에 선방할 것이란 전망을 최근 자주 듣는다. 대단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각종 악재가 충분히 반영됐고, 그래서 한국 주식이 싸졌다는 게 이유다. 시장이 너무 가벼워 살짝 부는 온풍에도 쉽게 튀어 오를 거라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다. 4일 증시가 협상가 트럼프의 관세 부과·유예 카드 활용에 열광하며 반등하는 걸 보면 터무니없는 낙관론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기술적 반등에는 한계가 있다. 악재 소멸이 억눌렸던 투자 심리를 달구고 저가매수로 이어지는 패턴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숫자는 후하게 쳐도 코스피 3000 정도다. 한국 경제가 대놓고 자랑하던 글로벌 선도 산업과 주도주를 상실한 탓이다. 코스피 4000과 5000은 언제부턴가 막연한 숫자로 읽힌다.

코스피 4000이 손에 잡힐 듯한 숫자가 되려면 자금 유입과 순환매가 꾸준히 활발한 시장 체질로 바꿔야 한다. 이는 기술적 반등만으로는 어림없다. 시장 참여자들이 기업 성장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기업 개인기만 봐선 이런 믿음이 쉽사리 오지 않는다. 세계화의 붕괴로 각자도생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자국 기업에 대한 정부의 든든한 지원까지 합쳐질 때, 한국 증시는 매력을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우리 정부가 기업 지원에 총력을 기울일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정치권 누구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받은 BYD가 현대차를 넘어 테슬라 자리마저 위협하고 대만 정부를 등에 업은 TSMC가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리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지난해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시작한 건 잘한 일이다. 모든 상장사로 하여금 밸류업을 한 번이라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정책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기업은 주주 눈치를 점점 더 볼 것이고, 주주도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우리 자본시장은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이 밸류업의 큰 축이긴 하나 전부는 아니다. 기업이 자신들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아 호실적을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밸류업의 다른 축이 완성된다.

지난 3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혐의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바로 다음날 이뤄진 이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3자 회동은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치권은 우리 기업들의 이 같은 위기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 명운의 맥락에서 기업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밸류업 1년 차의 초점이 분배였다면, 2년 차부터는 성장에도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여야가 법인세·배당소득세 등 세 부담을 덜어주는 일부터 합심하길 권한다. 밸류업의 두 축이 맞물려야 투자자 입에서 “코스피 4000도 충분하겠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