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온정 기자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 논의가 다시 뜨겁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해시드 오픈리서치 대표인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정책실장에 앉히면서 후보 시절 밝혔던 스테이블 코인 도입 구상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권도 분주하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기업·Sh수협 등 6개 은행과 금융결제원은 스테이블 코인 분과를 만들고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특정 자산, 주로 법정 화폐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줄인 암호화폐다. 기존 통화보다 결제가 빠르고, 해외 결제 시 환전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USDT(테더) 등 미국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이미 해외 송금이나 결제 분야에서 달러 대신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국내 수요도 적지 않다. 국내 무역거래의 10%가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투자 목적의 거래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크다. 최근 한국은행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코인원·고팍스)에서 거래된 USDT, USDC, USDS 등 3종의 달러 스테이블 코인 거래대금은 56조9537억원으로 집계됐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외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국내 결제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면 원화 결제 비중이 줄고, 한은의 통화량 조절 및 외환시장 개입 능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에 작년 4월 한국에서도 이용자 보호·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1단계 입법이 이뤄졌고, 현재 시장 투명성·공정성 확보를 위한 2단계 입법이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구심도 크다. 스테이블 코인이 기존 거래수단보다 불안정하다는 점에서다. 전통 금융시스템에서는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각 은행의 지급준비금을 관리해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지만, 비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안전장치가 부족해 ‘코인런’(코인 투매)이 발생할 경우 대량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가 단적인 예다. 1달러 연동을 내세운 테라의 가치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은 대거 환매에 나섰고, 발행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시스템이 무너졌다.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하는 경우 발행자가 상환을 위해 국채와 예금 등 준비자산을 투매하는 과정에 전체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은행도 이런 점을 경계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스테이블 코인 도입 논의에 한은도 인가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단 감독이 가능한 은행권부터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을 허용한 뒤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테이블 코인이 잘 설계되고 엄격히 규제된다면 디지털 경제 전환의 촉매가 될 수 있다. 국제송금과 탈중앙금융, 결제효율성 등 분야에서 유용한 인프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뢰 기반 자산은 단 한번의 위기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 한은의 우려를 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