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98년 미시시피를 포함한 50개 주(洲) 정부가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 2460억달러(350조원)를 받았다. 흡연자 질병을 치료하느라 주 정부가 지출한 진료비를 지급하라며 필립모리스와 R.J레이놀즈 같은 담배 회사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사실 1950년대 담배 소송이 시작된 이후 담배 회사가 줄곧 이겼다. 그러나 1990년대 담배 회사 연구원들이 “담배 중독성과 유해성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취지의 양심 선언을 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담배 회사들은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거액의 합의금을 내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담배 소송이 11년 넘게 진행 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담배 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533억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들이 담배를 피워 건강이 나빠지고 폐암·후두암에 걸려 건강보험 재정에서 진료비가 나갔으니 담배 회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1심은 담배 회사가 이겼고 건보공단이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담배 소송의 쟁점은 중독성과 유해성이다. 담배는 한 개비만 피워도 니코틴이 혈관으로 들어가 뇌에서 신경신호를 전달하는 도파민 수치를 높인다. 이에 따라 흡연자들은 계속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건보공단은 담배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담배에 향을 좋게 하는 첨가제도 넣어 니코틴 중독을 유도했다고 본다. 건보공단은 “니코틴 고유의 자극적이고 썩은 냄새를 줄이고 혐오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첨가제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1심은 담배 첨가제 성분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각국 보건당국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봤다. 유해성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건보공단은 흡연이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했지만, 1심은 흡연뿐만 아니라 가족력, 개인 습관, 주변 환경 때문에 폐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담배 회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건보공단은 2심에서 담배를 피우면 소세포 폐암에 걸릴 위험이 54배 높아진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반박 자료로 제출했다. 대한간학회, 대한폐암학회 등 의료계도 성명을 잇따라 발표해 “흡연이 폐암 발병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질병관리청은 매년 흡연으로 7만명이 사망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폐암 환자 85%는 담배가 원인”이라고 발표하면서 건보공단을 지원했다. WHO는 “담배를 피우면 폐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의료계에서 이미 결론이 내려졌다”면서 “담배에 있는 니코틴이 중독을 유발하기 때문에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4%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담배 회사들은 흡연이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흡연자가 기호(嗜好)에 따라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기업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2심 선고는 올해 하반기에 내려진다. 건보공단이 1심을 뒤집고 2심에서 이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국내 대법원 판례는 담배를 피우다 질병에 걸리면 개인 책임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소송은 의미가 있다. 담배를 피운 사람들이 폐암과 후두암에 걸리고, 이들에 대한 진료비가 국민 세금으로 나가는 상황에서 담배 회사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 전 국민이 11년간 고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담배 소송을 지켜보며 흡연 폐해를 생각하고 금연까지 결심했다면 소송은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