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막 시작됐던 2020년 3월, 미국 의회는 경제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당시 역대 최대인 2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을 약 10일 만에 이례적인 속도로 합의해 통과시켰다. 대선을 약 7개월 앞두고 하원은 민주당이,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해 극심한 대립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미국 정치권은 협력의 길을 택했다.
그로부터 5년여 지난 8일 현재, 한국 경제는 팬데믹 사태에 못지않은 위기 국면에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글로벌 무역전쟁의 막을 열었고, 한국은 25%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그 충격으로 한국의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7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5년 만에 최대폭(33.7원) 급등한 1467.8원을 기록했고, 증시에서는 코스피가 5% 넘게 폭락하며 지난해 8월 5일 ‘블랙먼데이’ 이후 8개월 만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6월 3일 조기 대선까지 약 2개월간 리더십 공백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은 겹악재다. 상호관세율 인하를 위한 대미 협상이 중요한 ‘골든 타임’에 있지만 리더십 부재로 외교력이 약해진 상황이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임에도, 이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정치권은 엇갈린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추경안을 내놓고 ‘네탓 공방’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은 34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관세 대응 외에도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지역화폐 등을 위한 예산이 담기면서, 경기 부양에만 중점을 둔 정부안(10조원)보다 24조7000억원이나 더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대상 25만∼30만원 선불카드 등을 포함해 15조원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편성의 전제 조건으로 ‘양당의 합의’를 내걸었지만, 양당과 정부의 국정협의체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며 “국회에 통상 대응특위라도 만들어서 의원 외교라도 하자”고 협의와는 먼 제안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는 이미 지난달 말 추경을 제안했는데 양당이 어떤 협의도, 어떤 의견 접근도 없이 각자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국과 비슷한 24%의 상호관세를 부과받은 일본의 대응이 부러울 정도다.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여야 당대표 회의를 주재했다. 초당적 협력으로 추경 편성안을 오는 6월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위한 실용적 해결에 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한 대응을 요구한다. 양당이 외교력을 총동원해 관세전쟁 대응에 나서도 모자라다. 추경 외에도 상속세 개편이나 국민연금 구조개혁 등 민생 현안에 대한 논의도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할 때다. 양당이 정쟁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골든타임을 놓친 경제는 쉽게 되돌릴 수 없다. ‘대선 시계’가 돌더라도, 국정은 멈춰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