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자본시장법 상으로는 문제가 되겠지만 가상자산이잖아요? 법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서 저희도 애매합니다.”
가상자산을 담당하는 금융 당국 부서장들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애매하다”, “난처하다”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수가 2000만명에 달하고, 거래대금은 주식시장을 추월할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는 사업자에 대한 기본 규제를 담은 특정금융정보법과 불공정거래 행위와 관련된 이용자보호법 정도가 전부다.
규제 사각지대는 악용을 낳는다. 일례로 금융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빗썸의 ‘렌딩’이 있다. 렌딩은 투자자가 자신이 보유한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추가로 가상자산을 빌려 투자할 수 있는 대출 서비스다. 투자자는 빌릴 투자금의 규모와 이용 기간을 설정하고, 상환 시기에 해당 가상자산이 오를지, 내릴지를 선택하면 가상자산 대출이 완료된다. 상환일에 투자자는 빌린 시점 기준의 원화 가치만큼의 가상자산을 상환하고, 수수료를 제외한 상승한 만큼의 차액을 가져간다.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는 받은 가상자산을 되팔고 만기 시점에 빌린 수량만큼 가상자산을 재매수해서 상환한다. 사실상 주식시장의 공매도와 다를 바 없다. 빚내서 투자하면서 롱(매수)-숏(매도) 포지션을 잡고, 일정 비율 이상 손실이 나면 청산된다는 점 등은 주식시장의 주식담보대출 및 선물 거래와 유사점이 많다.
해당 서비스를 자본시장법에 비춰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파생상품 판매자의 자격요건이다. 파생상품은 고위험투자다. 파생상품을 판매하거나 권유하는 기관은 금융투자업자로서 등록이 필요하며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빗썸은 금융 당국에 등록된 금융투자업자가 아니다. 빗썸과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록투리얼도 자산관리 및 대부업체다. 변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파생상품에 대해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금융 당국이 감독할 방법도 없다.
파생상품 투자를 유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격히 규제받는다. 판매업자는 투자자보호를 위해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고 상품에 대한 경고와 명확한 위험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렌딩 설명을 보면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광고가 전면에 위치하며 레버리지(차입)를 더 많이 끌 수 있는 ‘3회 렌딩’ 광고에는 ‘수익을 더! 더! 더! 극대화’라는 문구도 볼 수 있다.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은 한참 아래 작은 글씨로 써진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이것도 금융 당국에서 렌딩에 대한 적극적인 광고 자제를 요청한 결과다.
특히 렌딩을 제공하는 블록투리얼은 금융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가상자산사업자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가상자산 사업자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곳에 한정해서 거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렌딩은 매도·매수나 커스터디(수탁)처럼 가상자산 관련 법에서 규정한 영역을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사업이다. 사업자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국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 1%인 렌딩의 수수료도 통상적인 증권사 대출 수수료(0.1~0.4%)보다 훨씬 높다.
‘빚투’ 조장·높은 수수료·관리체계 부재에도 처벌은 없다. 가상자산과 관련해서는 렌딩과 같은 거래를 감독할 근거법이 전무하다. 사실 렌딩은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는 서비스’다. 금융 당국에서 “애매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회는 정쟁만 벌이느라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가상자산 규제의 사각지대를 방치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법의 허점을 이용한 악용 사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