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로 정치권의 사모펀드 규제 입법 움직임이 시작됐다. 다만 우려가 앞선다. ‘투기 자본의 약탈적 기업사냥’을 막아 홈플러스 사태와 같은 민생 피해를 막겠다는 게 취지지만, 정치권은 이미 사모펀드를 ‘악’(惡)으로 규정한 채여서다.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2차 전체회의는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여야 없이 MBK파트너스가 피인수 회사인 홈플러스 자산을 팔아 자신들의 배만 불렸다며 호통쳤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및 운영 구조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외면했다. 인수금융과 부동산 담보 대출의 차이를 간과한 채 지난 2015년 MBK파트너스가 인수할 당시 조달한 4조3000억원 인수금융을 두고 홈플러스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고 질타했다.
MBK파트너스는 당시 홈플러스 자회사인 홈플러스베이커리 지분 100%를 사들인 뒤 홈플러스베이커리로 홈플러스데스코를 인수, 이후 홈플러스데스코로 최종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할 수 없는 구조다.
증인으로 나선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을 받은 것은 없고, 인수하는 홈플러스데스코 명의로 지분 담보 인수금융을 조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정무위 의원은 “담보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왜 거짓말하느냐”고 호통쳤다.
국회는 이르면 내달 초 사모펀드 규제 입법 관련 토론회도 예정했다. MBK파트너스 외에도 사모펀드가 인수한 회사 중 홈플러스와 비슷한 자산 유동화 및 기업가치 하락 사례가 있는지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사모펀드가 악으로 규정된 채 사모펀드의 순기능은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계 자본이 국내 기업 헐값 인수를 막겠다는 국가적 의지에서 출발한 사모펀드는 그동안 국부 유출을 막는 것은 물론 산업 구조조정의 첨병으로도 활약했다.
동양매직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글랜우드PE는 동양그룹 구조조정 매물로 나온 가전제조 전문기업 동양매직을 인수, 렌털업체로 탈바꿈시켰다. 제품 종류를 줄이고, 직수형 정수기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운 것도 글랜우드PE의 역할이었다. 글랜우드PE 손을 거친 후 동양매직은 SK그룹 계열사가 됐다.
이 외에도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기업의 자금조달 파트너로 일상의 많은 부분에 스며들어 있다. 최근 남양유업은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로 주인이 바뀐 지 6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 것만으로도 적자를 벗어났다.
사모펀드는 경영권을 노리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인식에 가려져 있을 뿐 성장을 지원하는 파트너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MBK파트너스가 초래한 홈플러스 사태는 자산을 빼낸 MBK파트너스의 악행이라기보단 투자 실패로 보는 게 적절하다. 부동산을 대거 팔아 홈플러스의 체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형마트 업황이 좋았다면 이 또한 자산 운용 효율화라는 성공 케이스가 됐을지 모른다.
국내 사모펀드를 악으로 규정한 채 만들어진 규제는 순기능을 퇴색시키고 종국에는 외국계 자본의 국내 자산 인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정치권의 규제강화 움직임에 금융당국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사모펀드는 이미 몸을 사리고 있다.
그 사이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최근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조 단위 매물에는 대부분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기업 약탈과 투자자 피해를 막되, 부디 규제로 시장을 파괴하진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