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우리나라 정치 불확실성과 관련된 질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탄핵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고, 고령화와 인공지능(AI)의 도입 등 장기 이슈에 대해 주로 물어봤다”
지난 12일 S&P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해 진행한 연례협의에 참여했던 한 한국은행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탄핵으로 인한 심리 부진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S&P의 관심이 정치현안보다는 장기이슈에 쏠려 있었다는 말이 의외였다.
기재부가 S&P와의 연례협의 후 내놓은 자료를 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S&P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면담에서 비상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오히려 한국의 양극화 현상 등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S&P가 탄핵보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시적인 이슈라면, 경제 구조 문제는 한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과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단기적인 경제정책에만 관심이 쏠려 저출산·고령화 대응과 신산업 육성과 같은 장기 성장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율과 국채금리는 이미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460원을 넘기면서 1998~1999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 19일에는 한국의 30년 만기국채 금리(2.54%)가 일본 30년 국채 금리(2.55%)보다 떨어지면서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간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과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인 독일은 뒤처지는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5000억 유로를 투입하는 인프라 투자 특별기금을 편성했다. 역대급 규모에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역사적인 패러다임 전환 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를 위해 금과옥조로 여기던 재정준칙까지 완화했다.
우리나라도 독일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기 성장을 위한 파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반도체 등 분야에서 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는 주 52시간제를 완화하거나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경직된 고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미래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 해결을 위해서는 과열된 교육경쟁과 수도권 집중, 고용·주거·양육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한은은 최근 해결책으로 지방 거점도시 육성과 지역별 비례선발제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와 정치권, 학계에서도 각자 대안을 찾아 정·관·학 모두 참여하는 토론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
구조개혁 없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에만 집중하는 정책 기조가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S&P가 던진 질문을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적 혼란을 멈추고 한국 경제의 근본적 개혁에 집중할 때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