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난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이어 올 초 상장폐지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부실기업의 실질적인 퇴출 효과를 높이고, 동시에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 골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인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에 속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상장사들의 상장폐지 개선 기간도 이달부터 유가증권시장은 2년에서 1년으로, 코스닥시장은 최대 2년에서 1년 6개월로 단축됐다. 그간 한국 증시의 상승을 막았던 일부 문제 상장사들이 대거 정리될 수 있고, 부실기업을 효율적으로 상폐할 수 있다는 점에선 증시 건전성을 높일 수 있어 잘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근본적인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직접 현장을 다니고, 학계의 의견을 듣다 보면 이번 개선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보완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계기업의 퇴출이 늘면 국내 증시가 당장 오를 순 있지만, 중간재 수출 중심의 경기순환형 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3년 뒤 경기 상황에 따라 정상기업이 한계기업으로 오인되는 오류가 나올 수 있다. 상장사들이 기준 미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분별한 인수합병(M&A)이나 유상증자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은 내수 경기 부진과 더불어 작년 말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 IR 담당자들은 외국 바이어와의 미팅 시 “(한국의) 국가적 상황이 해결된 후 투자 등을 논의하자”고 항상 말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글로벌 경제 상황도 시시각각 변하는데, 한국의 기업들은 국내 정치적 리스크까지 떠안고 실적을 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퇴출 기준만 높여 기업들을 한 번에 증시에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총 기준이 실효성 있게 적용될 수 있는 세부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달 4일 보고서를 내고 한계기업 문제를 근원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장 내 경쟁 압력 강화, 정부·금융기관의 선별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적절한 시장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관리종목 및 상폐 규정 보완 등을 제시했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상폐가 결정되면 정리매매 과정에서 80~90%가량 낮아진 가격에 주식이 거래되다 보니 소액주주들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상폐 절차를 진행할 경우 해당 기업이 개선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는 개정안과 더불어 향후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