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적은 비용으로 챗GPT에 버금가는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강화하며 AI 기술 독주를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이어온 미국에 제대로 한방 먹였다.

‘딥시크 쇼크’의 다음 차례는 바이오일 가능성이 높다. 미·중 기술 패권 다툼이 바이오 분야로 번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불발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통과를 다시 추진하며 중국 바이오 기업 옥죄기에 나섰다. 특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중국 견제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최종 통과하면 중국 기업들은 세계 최대 바이오 시장인 미국에서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칼날이 날카로워질수록 중국의 굴기도 매서워지고 있다. 중국 CDMO 공룡인 우시 앱텍(WuXi AppTec)과 자회사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 진스크립트(GenScript) 등은 올해 초 의약품 공급망 이니셔티브(PSCI)의 공급기업 파트너로 가입했다. PSCI는 의약품 분야에 특화된 공급망 관리를 목표로 2013년 미국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미국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머크(MSD) 등 대형 글로벌 제약사는 물론, 세계 최대 CDMO 기업인 스위스 론자와 한국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 전 세계 80개 이상의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바이엘의 원료의약품(DS) 생산공장, 미국 화이자 항저우 생산공장, 중국 CDMO 기업인 CMAB 바이오파마까지 인수했다. 우시는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068270),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여러 CDMO 기업이 뛰어든 항체-약물접합체(ADC)와 펩타이드,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 기술도 일찍이 갖췄다.

중국의 바이오 혁신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과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 신기술 연구개발(R&D)의 3박자가 결합됐다는 평가다. 중국 바이오테크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는 미국 애브비가 중국 심시어자이밍의 삼중항체 항암제를 10억5000만 달러(1조5390억원)에 사들였다. MSD는 2022년 중국 켈룬의 ADC 기술 도입을 위해 94억7500만 달러(13조9000억원)를 투자했고,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BMS)은 2023년 쓰촨바이오킨에 84억달러(12조3140억원)를 내고 항암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미국과 중국의 바이오 분야 힘겨루기가 어떻게 끝나든 두 나라의 바이오테크는 정부의 지원 아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출 건 명약관화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의 바이오테크는 미국보다 기술력은 떨어지고, 중국보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부족하다. 이대로면 바이오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부딪히는 와중에 한국만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출범하면서 ‘CDMO 생산·매출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낙관적인 전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바이오 산업을 육성한다면서 출범한 위원회에 민간위원 24명 중 산업계 인사가 4명뿐이다. 이대로면 산업계 의견이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벌써 나온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효능·안전성만 확인되면 인허가 규제를 간소화해 주는 중국이나, CGT를 핵심 분야로 키우기 위해 임상시험 한 단계를 건너뛰는 일본처럼 실질적으로 기업을 위한 바이오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바이오 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바이오 산업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탁상공론이나 뜬구름 잡으면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