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거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국내 역직구(해외직접판매)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국 문화 위상이 높아지면서 케이(K)뷰티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직구 붐에서는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포착된다.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 등에는 역직구가 새로운 판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역직구 시장을 해외 플랫폼이 장악할 경우, 산업 주도권 자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이커머스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 역직구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는 최근 한국 셀러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5년간 중개·판매 수수료 0%, 보증금 0원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10% 내외의 판매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동남아와 대만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코리아도 입점 혜택으로 광고비와 물류비 지원 등을 내걸었다. 이베이는 편의점 GS25와 손을 잡고 편의점 택배 접수 등 배송을 지원한다. 아마존 글로벌셀링 코리아도 미래 뷰티 셀러를 발굴하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계획이다.
이들이 한국 역직구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것은 한국 제품이 가진 잠재력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직접판매액은 2014년 6791억원에서 지난해 기준 1조6972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해외에서 K뷰티나 K건기식, K패션 등이 인기를 끌면서다.
역직구 붐은 우수한 제품력을 가진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에는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불황으로 소비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판로가 정체된 상황의 돌파구가 되고 있어서다.
역직구는 아예 산업 전체의 판도를 뒤바꾸기도 했다. 현재 K뷰티 인기는 역직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뷰티로 이름을 얻은 인디브랜드들이 대부분 아마존 등 역직구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며 존재감을 확보해서다.
반면 국내 이커머스의 역직구 시장 진출은 미진한 상황이다. 국내 1위 쿠팡은 대만에 대대적으로 진출해 현지에 풀필먼트 센터 3곳까지 세웠으나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은 더디다.
티메프 미정산 사태로 큐익스프레스를 내세운 큐텐그룹 역직구 산업 청사진도 무산됐다. 11번가도 역직구 채널 ‘글로벌 11번가’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잠정 중단됐다.
국내 이커머스에서 다수 국가를 대상으로 역직구 사업을 하는 기업은 G마켓이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알리익스프레스나 쇼피 등에 비하면 존재감이 희미하다.
이에 따라 한국 역직구 시장이 중국이나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의해 잠식될 경우엔 수출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외국 기업들이 글로벌 고객 기반과 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국 제품을 저렴하게 유통하게 되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이나 유통업체가 현재 수익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 셀러 입점을 위해 현재는 이들이 파격적인 혜택을 내세우고 있지만, 플랫폼 기업 특성상 향후 시장지배력을 획득할 경우엔 독과점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 고객 데이터 유출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시장의 논리는 냉정하다. 자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한국 이커머스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셀러들이 지불하는 수수료나 광고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상품 구성 등으로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