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뭐다? 사회적 약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 문동은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라고 묻자 가해자 박연진이 한 말이다. 학교 폭력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주로 폭력을 저질러도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는 계산을 깔고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골라 괴롭힌다.
학교 폭력은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가해를 넘어 개인의 인격과 존엄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학교 폭력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는 높지 않은 편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접수된 소년 보호 사건은 3만5438건인데 이 중 63.2%(2만2144명)이 보호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주로 호기심(40.3%)이나 우발적 행동(39.2%) 등의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강한 처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떨어진 변호사의 아들도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학우에게 언어 폭력을 지속적으로 가해 전학 처분을 받았지만 오히려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처벌을 받는 대신 유명 대학에 입학했다.
해외 각국은 반면 형사 처벌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프랑스 의회는 최근 학교 폭력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면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 벌금 15만유로(약 2억원)까지 선고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에서 형법상 성인은 18세지만 13세 이상도 성인에게 선고하는 형의 절반까지 선고할 수 있다. 중국은 16세까지 형사 처벌하지 않지만 고의로 살인·상해 등을 저지른 경우 14~16세도 처벌하도록 지난 2020년 형법을 개정했다. 우크라이나는 행정위반법에 따라 폭행죄에 벌금형을 부과하는데 14~16세가 가해자인 경우 부모가 대신 처벌받는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인종·피부색·성별·장애·종교 등 차별을 이유로 자행된 학교 폭력을 형벌로 처벌하고 있다. 미시간주는 형법에 학교 폭력 처벌 조항이 있어 사망 사건 가해자에게 징역 15년이나 1만달러(1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국내에서는 학교 폭력 근절이 아직 요원한 말처럼 들린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작년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학교 폭력 사범은 1만1679명이다. 2021년보다 17% 늘어난 규모다. 처리된 학교 폭력 사범은 1만1562명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학교폭력 사건은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사법 처리 전에 교육기관이 자율적으로 학교폭력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사과, 피해자 접촉 금지 등 조치를 취한다. 형법·소년법으로 처벌하거나 민법상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촉법소년(10~14세)은 사회 봉사, 보호 관찰, 소년원 등의 처분을 받고 촉법소년이 아닌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엄벌보다 교화에 방점을 두는 게 사법부 분위기”라고 했다. 학교 폭력 등 어린 나이에 죄를 저질러도 100%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가정 환경이나 입시 경쟁 등 교육 환경으로 인한 구조적인 원인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형사 처벌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은 무관용의 원칙으로 초기에 대응해야 확산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미국 법무통계국에 따르면 2009년 12~18세 학생의 폭력·절도 등 범죄 피해율은 5.1%였는데 2020년 1.1%로 낮아졌다. 학교 폭력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한 이후 학교에서 일어난 범죄 발생률이 2019년 3%에서 2020년 1.1%로 낮아졌다. 법적 처벌이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통계적 증거다.
개인의 인격과 선의, 반성과 교화 가능성에만 기대는 것은 답이 아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형사 처벌 수위를 높여 어릴 때부터 폭력을 저지르면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
“난 이래도 아무 일 없다”는 게 아니라 네가 폭력을 저지르면 사회가 나서서 엄정하게 대응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보호하는 사회 시스템의 기본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