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혜 기자

“명품 시장에서 위조품(짝퉁)은 항상 존재해요. (명품 브랜드) 본사도 신경을 안 쓰잖아요”

최근 위조품 유통 취재중 한 명품업계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어차피 위조품은 항상 존재하니 검수 등 사후 처리가 최선이라는 요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명품 보복 소비가 늘어나면서 위조품에 대한 소비자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위조품 신고도 잇따랐다. 특허청에 따르면 위조 상품 신고 및 제보 건수는 2018년 5557건에서 지난해 7377건으로 33% 증가했다.

위조품으로 신고된 건수 중 다수는 명품 등 고가상품이다. 지난달 한 명품 플랫폼은 구찌, 루이비통, 샤넬 순으로 위조품이 가장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위조품 유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크림-무신사 대전’으로 불린 에센셜 티셔츠 정·가품 논란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크림은 지난 1월 “무신사에서 판매한 피어오브갓의 에센셜 티셔츠는 가품(가짜상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달 뒤 무신사 측은 이를 정면 반박했다. 무신사는 “브랜드 본사가 유통하는 글로벌 편집숍에서 직매입한 100% 정품만을 취급한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이어 무신사는 에센셜 브랜드의 공식 판매처인 팍선(PACSUN) 및 국내외 검증기관에 정품 여부를 의뢰했고, 가품 확정이라 할 수 있는 상품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신사의 주장이 틀렸다. 피어오브갓 측에서 이달 1일 무신사가 의뢰한 에센셜 티셔츠에 대해 정품으로 판정할 수 없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이전까지는 침묵하고 있다가 한국에서 정·가품 논란이 커지자 ‘이례적으로’ 본사에서 정품 판정을 해 준 것이다. 위조품 여부를 곧바로 확인해줘야 할 본사는 뒷짐 지고, 중간에 낀 유통 플랫폼이 논쟁을 이어가며 두 달 넘게 소비자들의 애만 태운 꼴이 됐다.

무신사 사건을 계기로 가품 논란이 커지자 명품·리셀 플랫폼들은 앞다퉈 한국명품감정원,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 등과의 업무 협약 등을 강조했다. 본사에서 정품 확인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니 사후 관리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업체들은 국가 감정 기관이 아닌 사설·민간 기업이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명품감정원은 “사설 기관의 감정 소견으로 이견이 있을 수 있다”라는 입장을 명시하고 있다. 본사에서 직매입하는 구조가 아니거나 본사가 확인해주지 않으면 정·가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신사를 포함한 플랫폼들은 해외 명품 브랜드 본사와의 직매입 계약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명품 수요는 많은데 본사에서 푸는 물량이 한정적이라 병행수입, 부티크(1차 도매상) 매입 등으로밖에 명품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3자를 통한 병행수입 등으로 명품 물량을 확보하면서 일일이 사전 검수하기는 어렵다는 게 플랫폼사들의 설명이다. 결국 플랫폼사들도 모르게 판매되는 위조품은 믿고 구매한 소비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만약 직매입이 어렵다면 병행수입 과정에서라도 본사가 관여해 자사 제품 유통 과정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값을 지불하는데, 아무도 정품을 판단해주지 않는다면 최고 1000만원대에 달하는 명품백을 사야 할 이유는 없어진다.

지난해 명품 브랜드들은 보복 소비의 영향으로 역대급 실적을 냈다. ‘에·루·샤’로 불리는 명품 3대장 브랜드의 매출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 세 브랜드가 지난해 한국에서 올린 매출은 3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명품 브랜드가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번 만큼 위조품 유통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정품 인증 관리에 함께 임할 필요가 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경영 매거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루이비통, 디올, 불가리, 펜디 등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는 2019년 기준 매년 1700만달러(약 210억원)를 위조 방지 소송에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위조품 관리를 위해 소송을 하거나 정품 인증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는다. 한국에서 나온 막대한 수익은 모두 해외 본사로 배당됐다.

검수 잘하는 플랫폼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위조품 유통에 손 놓고 있는 명품 기업들의 세태를 지적할 때다. 상품 검수로 정·가품을 판단하기 전에, 검수가 필요하지 않은 정품이 시장에 유통될 수 있도록 명품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