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돼지와 닭이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햄 앤 에그 샌드위치(Ham and Egg Sandwich)’ 전문점을 함께 열기로 했다. 그래서 돼지는 햄을 제공하고 닭은 계란을 책임지기로 하고, 대박을 기원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돼지가 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완전히 갈아 넣어야 하는 반면, 닭은 상대적으로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게임에서 투자자와 창업자의 입장을 나타내는 우화다. 물론 돼지는 스타트업 창업자이고 닭은 투자자다.

벤처캐피털이 실패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막대한 투자수익을 얻기 위함이다. 회사를 잘 성장시켜 성공적인 회수를 하겠다는 열망은 창업자나 투자자 모두에게 절실하다.

그러나 투자자와 창업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창업자는 자신의 돈, 시간, 노력, 열망 등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올인하지만 투자자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창업자보다 쉽게 발을 뺄 수도 적당한 수준에서 엑시트를 원할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했다. 이들은 평균 400여 개 스타트업을 심사한 후 1개 회사에 투자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신중함이 무색하게도 투자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대략 10개의 회사에 투자하면 그중 5개는 파산하고, 4개는 좀비 기업이 된다. 그리고 단 하나의 회사가 매우 성공적으로 엑시트한다.

이런 반복적 패턴을 ‘5:4:1의 법칙’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회사는 최소한 10배 이상의 수익을 제공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고, 그 돈을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벤처 투자자들은 왜 10개 중 1개의 투자만 성공인 게임을 하는 걸까? 확률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벤처투자의 속성을 알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확률 상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의 투자가 나머지 투자의 실패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익을 내는, 이른바 ‘대박’ 게임을 하는 것이다. 실패가능성이 높아도 성공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안기는 ‘드래곤(Dragon)’ 찾기다.

그렇기 때문에 벤처캐피털은 투자한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그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진 않는다. 손실을 최소화해 엑시트를 하고 투자 회사 중에서 잘되는 회사에 더 집중한다.

‘유니콘은 쇼이고 드래곤이 돈이다.’ 벤처투자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는 골프계의 유명한 격언 ‘드라이브는 쇼, 퍼트는 돈(Drive for Show, Putt for Dough)’이라는 말을 차용한 것이다. 골프 경기에서 호쾌한 드라이브 샷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제 아무리 멋진 샷을 날린 골퍼도 막상 퍼팅에 실패하면 경기를 잃는다. 드라이브 샷은 보기 좋은 쇼에 불과하고, 경기에 이겨 상금을 거머쥐려면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퍼트에 성공해야 한다.

유니콘은 골프의 드라이브 샷과 같다. 기업가치 수조 원의 유니콘이 새로 등장하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유니콘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고,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투자자들도 나타난다. 유니콘은 성공의 트로피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승부를 결정하는 건 유니콘의 타이틀이 아니라 마지막 퍼트, 바로 엑시트다.

실리콘밸리의 통계자료를 보면 스타트업의 약 26% 만이 엑시트에 성공하며, 엑시트의 방법으로 97%가 M&A였다. 나머지 기업들은 파산을 하거나 좀비기업으로 전락한다. 투자를 받은 기업이 IPO에 성공할 확률은 불과 0.1% 정도이며 10년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엑시트를 육상경기에 비유하면, IPO는 극히 일부 기업의 ‘마라톤’ 경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든 육상선수가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지 않듯, 모든 스타트업이 IPO로 엑시트를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비즈니스모델의 특징,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의 역량, 시장의 객관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스타트업의 엔드게임’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42.195km를 달려서 IPO에 도달하는 스타트업이 있는가 하면, 100m, 200m, 500m 단거리 선수도 있고, 중거리 선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스타트업은 IPO의 게임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창업 초기 단계에서 300만 달러 내외의 M&A를 통한 엑시트가 대다수 스타트업이 택할 수 있고 실현가능한 ‘보편적이고 교과서적인 모델’이다. 이는 스타트업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실리콘밸리의 경험이다.

고위험·고성장 비즈니스모델로 무장한 스타트업은 투자를 통해 성장하며, 이 투자는 일정기간내에 재무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투자 대상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엑시트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거둔 투자자(FI)의 자금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게 된다.

마찬가지로 엑시트를 통해 성공 경험과 자산을 축적한 앙트러프러너는 연쇄적인 창업에 도전하거나, 스스로 투자자가 되는 비즈니스 엔젤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엑시트가 창업자나 투자자에게 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활력을 부여한다는 점에 매우 중요하다.

만약,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회수를 못하게 되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투입될 수 있는 자금이 고갈된다. 이는 곧 생태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실리콘밸리와는 달리 엑시트의 의의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거의 모든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신체조건이나 장단점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마라톤을 하겠다는 식이다.

또한, 정부도 모태펀드를 비롯한 여러가지 스타트업의 지원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엑시트에 대해서는 명확한 방향과 전략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엑시트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엑시트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