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걱정과 대기오염, 그리고 기후위기까지, 이 모든 고민을 한 번에 덜어줄 묘책이 있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까이에 그런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있다. 바로 바이오에탄올이다.

흔히 ‘옥수수로 만든 휘발유’라고 불리는 바이오에탄올 혼합 연료는 이미 미국, 브라질 등 세계 60여 개 나라에서 일반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선진국의 주유소에서는 휘발유에 10%가량의 바이오에탄올을 섞은 E10 연료를 파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 덕분에 이들 국가는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과 유해 대기오염 물질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 이 친환경 연료를 찾아볼 수 없다. 전기차, 수소차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에 바로 대응이 가능한 바이오에탄올을 휘발유에 혼합해 당장 수천만 대에 이르는 운행 차량의 연료를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바꾸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

한국이 망설이는 사이, 우리와 유사한 산업 환경에서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거부하던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운행 차량의 연료 10%를 바이오에탄올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로 2028년부터 일부 지역에 바이오에탄올 혼합 휘발유를 공급하기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주유소에 새로운 연료 탱크를 설치하는 데 정부 보조금을 주고, 정유사들과 자동차업계도 협조를 약속했다. 2030년에는 전국적으로 10% 에탄올 혼합 휘발유(E10)를 본격 상용화하고, 나아가 2040년에는 20% 혼합 연료(E20)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왜 일본은 이런 결단을 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교통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이다. 일본의 온실가스 배출 중 약 20%가 차량 등 운송수단에서 나온다. 여기에 바이오에탄올 연료를 쓰면, 연간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CO₂)를 줄일 수 있다. 식물에서 나온 연료를 태우면 그 식물이 자라면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만큼만 배출되므로 ‘탄소중립 연료’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오에탄올은 휘발유의 품질(옥탄가)을 높여 엔진 성능을 향상시키고, 연소 시 일산화탄소나 미세먼지 전구물질 배출을 줄여준다. 환경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연료인 셈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는 곡물 자원이 부족해 바이오연료는 사치”라거나 “바이오에탄올은 다 수입에 의존해야 해서 득 될 게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제 10여 년 전 바이오에탄올 시범사업을 통해 기술 검증까지 마쳤지만, 지금껏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득보다 실이 크지 않다. 수송용 에너지의 100%를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구조야말로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 국제 유가가 출렁일 때마다 물가와 경제에 비상이 걸리는 현실을 언제까지 감수할 것인가. 휘발유의 10%만이라도 국내에서, 또는 안정적인 우방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다면 에너지 안보에 작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에탄올 생산의 부산물인 사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나라다. 미국에서 옥수수를 들여와 에탄올을 뽑아 쓰고 남는 부산물(DDGS)을 돼지, 소 먹이로 활용하면 수입 사료를 대체하는 이익도 생긴다. 세계 2위의 DDGS 수입국인 한국이 에탄올 직접 생산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단순히 연료를 수입하는 것을 넘어 국내에서 연료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또한 지속가능한 항공유 생산을 바이오에탄올을 활용하려는 국내외 정유사의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바이오에탄올의 도입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 수송용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시작하지 못한 마지막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를 맞고 있다. 이제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더 미룰 수 없다. 다행히 국제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바이오에탄올은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자동차를 개조할 필요도, 충전소를 새로 깔 필요도 없다. 기존 주유소와 차량을 활용하되 연료 성분 10%만 바꾸면 된다. 차량 운행자는 주유 시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하늘은 더 깨끗해지고 기후변화에도 대응하게 된다. 미국 에너지부 연구에 따르면, 대도시에서 바이오에탄올 연료를 쓸 경우 유해 배기가스가 줄어들어 암 발생률까지 유의미하게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에탄올 사용이 국민건강 개선과 의료비 절감에 기여한다”는 에너지 전문가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국내 정유사는 바이오에탄올 혼합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걱정한다. 하지만 친환경 연료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은 이제 정유업계에도 생존 전략이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국제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과 지원도 요구된다. 바이오에탄올 혼합을 의무화하되, 초기에는 세제 혜택 등 당근 정책으로 연착륙을 도와야 한다. 주유소 설비를 개조하고 품질 관리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일부 분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명확한 정책 신호가 중요하다. “한국도 가까운 시일안에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 10%를 섞겠다”는 선언을 해야 산업계가 움직인다. 그 신호탄은 정부만이 쏠 수 있다.

마침내 바이오에탄올 도입에 시동을 걸 때다. 일본처럼, 아니 일본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도 있다. 이미 탄소중립을 향한 출발선은 늦었지만, 따라잡을 시간은 있다. 석유 10%를 친환경 연료로 바꾸는 작은 변화가 가져올 긍정적 파급효과는 우리의 예상 그 이상일지 모른다. 지금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는 당신의 자동차가, 내년에는 90%의 석유와 10%의 옥수수로 달린다면 어떨까. 그 10%의 용기 있는 전환이 지속가능한 미래로 향하는 엔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