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인공지능 분야의 한 젊은 창업가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회사 본사를 미국에 만들었어요. 물론 서비스는 한국에서 하지만요. 왜냐구요? 전 감옥 가기 싫거든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동안 정치가 기업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생생하게 지켜본 입장에선 그의 말에 공감이 됐다. 왜 젊은 창업가들이 이런 말을 할까? 단순히 한 사업가의 지나가는 말일 뿐이라고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질 똑똑한 청년 창업자들이 느끼는 실존적 공포다. 이들의 두려움은 규제, 사회적 시선, 정치적 리스크, 그리고 국가 시스템의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다. 우리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왜 이토록 많은 유능한 청년들이 대한민국이 아닌, 해외에서 창업의 미래를 설계하는가? 다른 창업자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카카오가 미국회사였다면 김범수 의장은 구속 안 됐을 걸요. 아마 칭송을 받았겠죠. 엄청난 스트레스로 암까지 걸렸잖아요. 그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절대 한국에 본사를 두지 말자고”

한국에서 창업, ‘존경’ 대신 ‘의심’ 받는 길

한국 사회에서 창업자나 부자는 ‘존경’보다 ‘의심’의 대상이다. 기업이 성공하면 사람들은 박수보다 비난을 먼저 보낸다. “돈 많이 벌었으니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태도. 이는 카카오, 쿠팡 같은 유니콘 기업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카오가 주식 시장에서 상장 후 창업자들이 지분 일부를 매도하자 “회사를 팔고 튀는 것 아니냐”는 먹튀 비난이 쏟아졌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를 ‘합리적 엑시트 전략’이라 보며, 창업자의 개인 성취로 존중한다.

카카오는 특히 정권이 바뀌자 집중 타깃이 되었다.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칭송받던 카카오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플랫폼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집중 단속을 받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의도를 확인한 유관기관은 발빠르고 힘있게 움직였다. 공정위와 국세청, 금융당국 등 여러 기관의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어졌고, 이는 단순한 기업 감시 수준을 넘어 사실상 ‘정치적 견제’의 성격이 짙었다.

정치권은 카카오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부도덕한 기업’이라며 여론몰이에 나섰고, 이는 주가 하락과 기업 이미지 실추로 이어졌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던 서비스마저 정치 논리에 의해 위축되었고, 내부에서는 “창업자가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됐고 실제로 구속됐다. 이 모든 과정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가 얼마나 정치에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심지어 기부조차도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과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 ‘기빙플렛지(Giving Pledge)’에 참여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사회는 이를 존경보다는 냉소로 맞이했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난부터 세금 회피 의혹까지, 선의가 되려 의심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누가 기부를 하려 하겠는가. 사회적 부를 나누는 일조차 긍정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문화는, 부의 선순환 자체를 막는다.

비슷한 사례로,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해외에 있는 한 반도체 기업의 임원들이 출국금지를 당해 수개월간 해외 출장을 가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공식적인 기소나 판결 없이, 단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외 영업 활동이 마비됐다. 이로 인해 회사는 주요 거래처와의 계약 진행에 차질을 빚었고,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기업이 법을 어겨 수사받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가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창업자들 입장에서는 언제든 동일한 상황이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 회사의 본사가 미국이었어도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는 문화 차이만이 아니다. 한국은 부자가 되는 길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조세당국의 과도한 감시, 수시로 바뀌는 기업 관련 법안, 정치권의 포퓰리즘식 기업 때리기 등은 기업, 그리고 특히 창업자에게 법적 리스크를 일상화시킨다. 창업자가 성공했을 때의 ‘보상’보다 실패했을 때의 ‘처벌’이 훨씬 크다.

정치가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나라

정치란 결국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특히 청년 창업에 있어 정치의 역할은 더욱 결정적이다. 규제를 풀고, 신뢰를 보장하며, 혁신을 보호하는 것이 정치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타다” 사태다. 2019년, 모빌리티 스타트업 타다는 법적으로 허용된 틈을 활용해 새로운 운송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반발과 정치권의 표 계산 앞에서 정부는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혁신을 제도권에 편입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기득권의 압력에 굴복해 새로운 산업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 사건은 청년 창업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당신이 아무리 법을 지켜도, 정치가 당신을 처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법 통과에 앞장 섰던 정치인은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완전자율주행차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 기술이 택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될 경우 기존 산업과의 거대한 충돌이 예상된다. 특히 전통 택시업계와 정치권이 손잡고 새로운 기술을 억제하려 들 경우, 이는 단지 한 기업이나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은 이미 자율주행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기술을 늦추고 후퇴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정치가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순간, 한국은 미래 산업에서 밀려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길은 해외다. 제도적 예측 가능성이 높고,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성공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 미국, 싱가포르 같은 나라가 그렇다. 실제로 많은 한국 청년 창업자들이 미국 델라웨어에 법인을 설립하고, 투자 유치와 기술 개발은 현지에서 진행하면서, 한국은 단지 시장으로만 활용한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미국기업이라는 갑옷을 입으려는 것이다.

정치가 대한민국을 다시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야

청년들이 다시 대한민국을 창업의 땅으로, 기회의 땅으로 보게 만들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정치 시스템이다. 첫째, 법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 정부가 산업 규제를 만들 때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예고 기간이 필요하다. 법이 일방적으로 창업자를 뒤통수 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

둘째, 정부는 창업자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혁신 기업이 등장했을 때 정치권은 이를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아닌 ‘사회 전체의 발전 가능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 출발은 기업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관료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셋째, 창업 실패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필요하다. 미국은 실패한 창업자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 한국은 실패를 ‘낙인’으로 간주하며, 재기마저 어렵게 만든다. 이 문화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정치인의 인식에서 바뀌어야 한다.

해외로 나간 청년 창업자들, 그들을 한국이 품을 수 있을까

지금도 많은 한국 청년들이 실리콘밸리,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법의 보호를 받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자신들의 비전을 마음껏 펼친다. 반면 한국에서는 같은 일을 하면 언제 어떤 이유로 범법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면, 한국은 청년 창업자라는 ‘인재 수출국’이 될 것이다.

결국 정치가 변해야 한다. 청년들이 “나는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 그 나라의 정치는 기업가를 동반자로 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도 의미 없다. 스타트업이 자라기 위해선 ‘돈’보다 ‘자유’가 먼저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정치가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