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 뉴욕 라운드어바웃시어터컴퍼니 매니저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는 건 K-팝이나 K-영화, K-드라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선 <어쩌면 해피엔딩>과 <위대한 개츠비>가 오픈런 (무기한 상연) 공연 중이다.

이 작품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무대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뮤지컬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처음 선보이기까지 평균 7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여러 단계의 개발을 거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과해 첫선을 보이는 작품 중에서도 장기 공연에 들어가는 건 10% 안팎에 불과하다. 2022년 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는 KAMS(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 지원 사업은 한국 뮤지컬이 이런 가시밭길을 견디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꿈의 무대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작품들이 뉴욕 안팎의 다양한 규모의 극장에서 트라이아웃 공연 (평단과 관객의 평가를 통해 작품의 가능성을 테스트 받는 시범 공연)을 하기도 한다.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하데스타운>, <해밀턴>과 <디어 에반 헨슨> 모두 비영리 단체에서 트라이얼 런(trial run·공식 공연 전 하는 시범 공연) 진행 후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바 있으며, 이와 같은 작품 개발 경로는 현재도 프로듀서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뉴저지 주에 위치한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는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진출을 알린 신춘수 총괄 프로듀서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가 2023년 10월 트라이아웃을 했던 유서 깊은 비영리 공연장이다. 1200석 규모의 극장으로 1934년 개관 이후 매년 5개 이상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뉴시즈>, <헤라클레스> 등 디즈니도 선택하는 트라이아웃 기관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미주 투어 프로덕션도 다수 런칭한 바 있다.

뉴욕 씨어터 워크샵은 최근 브로드웨이 최초 한국인 주연으로 더욱 유명해진 <하데스타운>의 2016년 5월 트라이아웃이 진행된 극장이다. <하데스타운>의 경우 트라이아웃 3년 후인 2019년 9월 브로드웨이에 오픈했으며, 현재 매주 평균 100만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979년 설립됐으며 조나단 라슨의 <렌트>, <원스> 등 다수의 작품이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여 25개의 토니상을 수상한 비영리 극단이자 공연장이다.

또 다른 뉴욕 비영리 기관 중 유명한 더 퍼블릭 씨어터 역시 트라이아웃 공연을 통한 작품 개발에 앞장서는 기관 중 하나다. 1954년 조셉 펩의 비전하에 설립된 더 퍼블릭 씨어터는 로워 맨해튼 지역에 위치해 있는 건물 이외에 센트럴 파크 내부에 있는 델라코어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다. 뮤지컬계 새로운 작품 장르를 탄생시킨 <해밀턴>의 경우 2015년 2월, 뉴욕의 더 퍼블릭 씨어터에서 개발 및 트라이아웃 공연을 진행했으며, 1967년에는 <헤어>와 1975년 <코러스 라인> 등 브로드웨이 대규모 흥행작들의 트라이아웃 장소이기도 하다. 54개의 토니상, 152개의 오비상, 42개의 드라마 데스크 상과 5개의 퓰리쳐 상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위 세 기관의 공통점은 트라이아웃뿐 아니라 직접 작품 커미션 및 개발을 모두 진행하는 비영리 기관이라는 점이다. 뉴욕과 미국 전역에 걸쳐 있는 비영리 극장 및 공연기관 네트워크는 기업, 정부, 문화재단 및 개인 기부자로부터 기부를 받아 총 운영 예산의 평균 67% 상당을 충당하며, 넷플릭스의 정기구독과 흡사한 형태의 시즌 패스를 구매한 ‘구독자’ (Subscribers)라는 고정 관객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익 구조는 예술 단체 기부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 공연 시장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대다수 기부자는 금전적 기부를 통해 세금 공제 혜택 및 기관 공연 정식 오프닝 공연 티켓과 오프닝 나잇 파티 등 혜택을 제공 받는다.

이러한 기부금을 적극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공연 개발과 인재 육성을 할 수 있도록 작품 개발과 교육 부서 등의 사업 구도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 많다. 이와 같은 비영리 기관의 경우 신예 작가 발굴 및 리딩 워크샵 지원 등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인큐베이터로서 작품뿐 아니라 인재 관련 지원을 하고 있으며 금전적인 한계에 부딪혀 도전하지 못하는 창작자들에게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 라운드어바웃씨어터컴퍼니의 언더그라운드 시리즈와 TWDP(Theatre Workforce Development Program) 등은 공연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에,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예술 활동인 공연 예술의 중심,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한 중요한 개발 단계에 있어 트라이아웃과 비영리 단체는 이미 미국에서는 표준이 됐다. 아직 이같은 구조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 시장에 도입돼 작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