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말 네이버 자회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가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국내기업들의 해외 주식시장 진출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 야놀자와 토스가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웹툰은 2016년 미국에 웹툰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2020년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 미국 자회사를 본사로 바꾸고, 한국 본사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소위 한국에 있던 본사를 미국으로 바꾸는 플립(flip)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유형을 분석해 보면, 단독투자가 70%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2020년까지는 미미했던 플립이 2021년부터 합자투자나 M&A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이며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플립은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전략적인 이유로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주로 미국)로 본사를 이전하고, 기존의 한국 법인을 청산하거나 해외 본사의 자회사로 만드는 개념이다. 이때 한국 회사의 주주들은 해외에 신규 설립된 법인의 주식과 교환하는 스왑(swap)을 한다. 그래서 해외에 설립된 회사의 주주구성은 한국과 동일하게 된다. 본사를 해외로 이전한 후 한국 회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해외 본사의 100% 자회사가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스타트업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과정도 복잡한 플립을 하려는 걸까.
첫번째,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큰 미국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에 본사가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언제든지 회사의 상황을 쉽게 파악하고 수시로 경영진을 만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법제도를 선호한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본사가 한국에 있으면 한국 법을 잘 알아야 하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미국에도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많은데 외환거래나 허가 등 각종 행정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한국에 굳이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밖에 없다.
두번째, 반도체, 데이터 사이언스, AI 등 첨단 분야의 인재풀이 넓어서 우수 인력 확보에 유리하고, 우수기술을 보유하거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세계 유수의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가 용이하고, 보유기술의 이전이나 M&A 대상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등 다양한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번째, 주요 거래처가 해외에 있는 경우 고객과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본사를 해당 국가에 두는 것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각종 허가, 세금제도, 통관절차, 회계처리 방식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아무리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해외와의 비즈니스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주고객이 있는 국가에 본사를 두는 것이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다.
네번째, 하려는 비즈니스모델이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해외에서는 합법인 경우다. 대표적으로 원격진료, 법률 플랫폼 등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허용되지만 한국에서는 테스트조차 어렵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다는 것이다. 매년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로 급성장한 유니콘기업들이 수백 개씩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들 비즈니스모델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유니콘을 꿈꾸며 세계시장에서 성공하고 싶은 스타트업들이 플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립에는 현실적으로 굉장히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첫번째는 한국회사의 모든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엔젤 투자나 VC와 같은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은 경우에 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한국 회사의 주식을 신설된 해외 법인의 주식과 스왑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세금과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립을 준비하는 기업이 아직 투자를 받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세금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높은 기업가치로 투자를 받은 경우라면 창업자나 초기 투자자들은 주식을 현금화하지는 않았더라도 엄청난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할 수 있다.
세번째는 한국과 미국 양측의 법률, 회계, 세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비교적 최근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사례가 많지 않아서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플립은 특성상 이론적인 법률, 회계 자문과는 달리 회사의 상황에 따라 외환 당국, 한국은행, 기재부 등 여러 정부 기관은 물론 해외 기관과도 직접 소통하고 모르는 절차는 직접 확인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과 잘못된 자문으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글로벌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이러한 복잡한 플립 절차를 거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아예 해외에 본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늘고 있으며, 이미 한국에 회사가 설립되었더라도 아주 초기이고 투자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잡한 플립 대신 회사를 새로 설립하기도 한다. 이렇듯 플립은 투자유치, 기술, 인력 확보, 시장 확대 등이 주 목적이다.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규제 등을 피해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세금이 발생할 수 있다.
플립은 과거 막연한 꿈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아메리칸 드림과는 확연히 다르다. 확실한 목적과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도 스타트업의 세계화를 위해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올바른 길로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수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정책과 인프라가 하루빨리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