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이사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사가 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주주 대표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소유자는 주주이고 이사회는 주주를 대신해 최고경영자(CEO)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주주는 총수 일가부터 기관, 개인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고 이해관계도 다르다. 주주 중에는 투기 세력도 있다. 투기 세력은 기업의 장기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이익을 얻는 게 목적이다. 상법 개정안은 투기 세력도 다른 주주처럼 공평하게 대우하라고 하는데, 공평한 대우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일부 투자자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낙후돼 증시가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정의의 사도처럼 등장해 회사 지분을 취득하고 이사회 진입을 시도하지만, 대부분 이익이 나면 지분을 팔고 떠난다.

사명을 아예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으로 지은 KCGI는 지배구조를 개선해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겠다며 한진칼과 오스템임플란트 지분을 매수했지만, 각각 3년·1년 만에 이익을 남기고 지분을 처분했다.

모나코의 소버린자산운용은 2003년 SK그룹 지주회사인 SK㈜ 지분을 대거 취득하며 지배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의 이사직 박탈을 추진하면서 경영권을 흔들었고 주가가 급등하자 2005년 6월 투자금의 5배가 넘는 1조원에 가까운 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지배 구조는 의사 결정을 내리는 원칙이나 체계를 말하는데, 정답이 없는 문제다. 좋은 지배 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른 상황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모호한 표현은 주주와 기업 간 분쟁만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영국·독일·캐나다·일본 등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한정한 이유다.

소액 주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투자자는 단기 차익을 얻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을 때처럼 기업이 살아남고 더 크게 성장하려면 당장 손실이 나도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최근 일부 기업이 소액 주주에 불리하고 총수 일가에만 유리한 의사 결정을 내려 눈총을 받았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렇게 소액 주주를 우롱하고 자본시장을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기업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은 지금도 금융 당국이 규제할 수 있다. 두산 지배 구조 개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도 기존 주주가 반발하자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어 무산시켰다. 상법을 개정해 이런 행동을 막으려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개정안은 공포 후 즉시 시행된다. 재계는 모호한 규정 탓에 관련 판례가 쌓일 때까지 기업과 투자자 간 분쟁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준이 모호해 2022년 1월 시행 전후로 큰 혼란을 겪었다. 투기 세력이 한국 기업을 흔들지 못하게 상법 개정안 후속 조치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