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TV 토론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권영길 후보는 노무현, 이회창이라는 거대 양당 후보 사이에서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2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하는데, 더 팍팍해졌다고 느끼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서민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장기카드대출(카드론)의 잔액이 최근 3개월 새 11조원 넘게 늘었다. 카드론보다 대출 심사가 느슨한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는 매달 5조원씩 늘고 있다. 기업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분기 0.59%로 1년 전(0.34%)보다 1.7배 급등했다. 부실 우려가 크지 않던 대기업 대출 연체율도 0.09%로 치솟았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내수와 수출이 동반 침체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정부는 무너진 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숙제를 어깨에 짊어졌다. 여건은 갖춰졌다. 50%에 가까운 득표율과 190석이 넘는 범여권의 지원을 고려하면 새 정부 초반 국정 운영은 거침없는 추진력을 받을 수 있다. 무소불위의 힘을 바탕으로 경제를 살리는 일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다행히 새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는 ‘회복’과 ‘성장’에 방점이 찍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 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 첫 번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TF(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10대 공약에서도 1호로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내세웠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새 정부가 당장 착수해야 할 과제는 내수 진작이다. 최소 30조원 규모가 예상되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돈을 주는 정책은 이미 효과가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 현금 퍼주기는 반짝 경기 부양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고물가를 부추길 뿐이다. 내수와 밀접한 건설 활성화 대책과 소비 여력을 늘릴 수 있는 일자리 지원 관련 투자가 절실하다.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위해 빠르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관세를 50% 인상하면서 철강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새 정부는 명확한 통상 기조를 설정하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출 시장 다변화도 동반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철강·조선 등 5대 산업으로 그동안 버텨왔지만, 세계 선두권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혁신의 부재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주도할 산업은 인공지능(AI) 분야다. AI를 중심으로 전 세계 산업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 한국은 AI 선도국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영국 토터스미디어가 집계하는 2024년 국가별 AI 역량 순위에서 미국은 100점으로 1위, 중국은 53.88점으로 2위, 한국은 27.26점으로 1·2위와 격차가 큰 6위다. AI 생태계 조성, AI 반도체 산업 육성, 관련 인재 양성 등에 국가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대표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재명 대통령이 마주할 과제에 대해 “탄핵의 끝에서, 위기의 시작으로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지금 개선하지 않으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한국도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