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격에는 날카로웠고 정책에는 무뎠다. 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나선 후보들 얘기다. 역대 선거에서도 늘 보던 풍경이라 낯설진 않다. 과연 다음 대통령은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까.

사회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이번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말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후보들 덕분에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면 잘 먹고 잘 사는 데 필요한 이야기라도 생산적이어야 했다. 그랬다고 느낀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경제 상황은 과거 겪었던 경제위기 수준으로 나쁘다. 지난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2% 감소했다. 역성장이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 미만으로 보는 기관이 여럿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은 국가의 자원을 모두 투입했을 때 물가 상승 없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40년대에 0%대로 추락한다고 예상한 바 있다. 한국 경제가 서서히 가라앉을 거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후보들은 이를 해결할 실력이 있음을 별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공약을 봐도 토론을 봐도 마찬가지다. 꼭 필요해 보이는 것에 대한 계획은 없고, 듣기 좋은 말만 잔뜩이다. 재정 상황을 모르는지, 알면서 눈 꾹 감고 말하는 것인지 퍼주겠다는 약속이 난무한다.

대표적인 게 세금 감면 공약이다. 주요 후보들은 각종 공제로 소득세를 줄여주겠다는 공약을 쏟아냈다. 법인세와 상속세 등 다른 감세 공약도 여럿이다. 고령화로 가만히만 있어도 지출이 늘 상황인데, 세원을 넓히고 세율을 높이겠다는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감세와 별개로 복지 공약도 끝없이 쏟아진다. 간병비를 국민건강보험 보장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공약, 65세 이상 버스 무임승차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인 예다. 하면 좋은 일인 것은 맞는데 문제는 역시 돈이다. 설득력 있는 재원 조달 방안을 듣지 못했다.

그럼 성장에 대한 청사진은 믿을 만 했을까. 후보들은 저마다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제일 앞쪽에 뒀다. ‘100조원’과 ‘3대 강국’으로 내용도 비슷하다. 하지만 역시 누가 얼마를 대고, 어디에 쓸 것인지 두루뭉술할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최우선 과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만난 정부 고위 관료와 경제학자들은 공통으로 ‘인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생산과 소비, 투자를 늘릴 백가지 대책을 내놓아도 경제활동인구가 이런 속도로 줄면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이걸로 과연 되겠는지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난임 지원, 돌봄 확대 등은 그동안 숱하게 봐온 정책이다. 교육비 세액 공제 확대, 소득세 기본공제액 상향 등은 효과가 불분명한 감세 정책이다. 인구를 늘릴 또 다른 방식인 이민과 관련된 정책도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다.

물론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모든 것에 해법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쓸만한 공약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당장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방안이든 미래 대한민국이 우뚝 서게 할 방도든 한 가지라도 믿음이 가는 정책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후보 주변에 있는 경제 참모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선거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국민을 설득하기에 부족하지도 않다. 이제라도 포퓰리즘 소리 들을 공약은 그만 내놓고 경제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주길 바란다. ‘호텔 경제학’ 논쟁만 보고 투표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 대통령 후보는 정말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