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하자마자 ‘피크 차이나’ 기획의 일부를 맡았다. 피크 차이나란 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 미·중 갈등으로 인한 첨단기술 고립 등으로 중국의 경제 성장이 정점에 달했다는 이론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 내부 시각은 달랐다. 당시 기자와 인터뷰했던 한 중국 경제계 인사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며 “지능화를 통한 제조업의 고도화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인구 구조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할 기회”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반세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3.0%(2022년)를 막 기록했을 때였다. 코로나19 봉쇄가 풀렸음에도 소비 지표는 좀처럼 안정적인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했고,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소식이 연일 쏟아졌다. 산업 현장이 활력을 잃으면서 청년 실업률이 치솟았다. 긍정적 기사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편견도 강해지는 듯했다. 중국에 오기 전부터 회의적 시각이 컸다. 공산당 일당 정치체제로 인해 경직된 사회에서 혁신이 가능할까 싶었다. 중국이 모든 것을 베끼기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질보다 가격을 낮춰 많이 파는 데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도 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식품 위생 관련 문제도 중국이 아직 갈 길이 먼 국가라는 인식에 일조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잠재력이 있다지만, 중국을 미국과 비교 선상에 두는 것은 무리라고 봤다.
이렇게 진했던 색안경은 중국 베이징을 벗어나 직접 둘러보는 산업 현장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소비 침체라고 하지만,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솽스이(雙十一·11월11일)’를 앞두고 찾은 한 지역 물류센터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마저 관광지들은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일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경제 지표만 봐서는 읽을 수 없는 부분이 현실에 있었다.
중국 전역에 있는 첨단기술 기업들은 또 어떤가. 이들은 모방의 단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였다. 수많은 천재들이 모여 혁신을 거듭하고, 세계적 기술력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저사양 반도체로 강력한 성능을 탑재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5분 초고속 충전을 개발하고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으로 올라선 비야디(BYD), 미국의 제재를 뚫고 5세대(G) 스마트폰을 만들어 낸 화웨이 등 모두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들은 말 그대로 제조업의 고도화를 선도하고 있다.
강력한 혁신과 경제 회복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정치 체제가 한몫했다.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면, 전국 유관 부처가 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힘이 이들에게 있었다. 전기차와 AI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번 육성하기로 마음먹은 산업은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끝까지 밀어준다. 권력 구조 등 여러 부문에서 단점이 많고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체제이지만, 경제 정책의 치밀함과 행동력 측면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베이징에서는 자리마다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방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달러를 깔고 앉은 미국의 글로벌 경제 장악력과 막강한 군사력 등을 고려하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진짜 모습을 보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중국 경제가 당장은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의 공격에 이만큼 버텨낼 수 있는 것도 중국이라서가 아닐까. 먼 미래에도 세계의 패권이 미국 손에 있을지는 이제 장담하기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