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랭귀지(Photo Language) 크리에이티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ㅣ김용호 지음ㅣ몽스북ㅣ544쪽ㅣ3만9000원
“나는 쓸데없는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단순히 ‘찍는다’라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스토리텔링 사진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두자로 평가받는 김용호 사진작가의 고백이다.
그는 세상에 무용한 경험은 없다며, 모두가 하찮게 여기는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의식이 살아있다면 ‘좋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작업이 될거라 생각해 참여한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 ‘페리에주에’의 전시 작업에서도 사소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샴페인 병 라벨에 프린트된 꽃을 보다가 ‘아름다운 시절(벨에포크)’을 떠올렸다.
다른 샴페인 회사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역사성, 정통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추구한 것과 달리 샴페인의 의미를 살폈다. 귀족 문화의 상징이자 축배의 술인 샴페인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며 전시작을 만들었다. 1909년 프랑스 파리의 살롱과 2009년 서울 덕수궁에서 샴페인을 즐기는 여성을 보여주며 시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운 인생을 담았다.
오랜 기간 패션 잡지에서 옷과 인물을 담은 그는 모든 유명인들이 작업하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기도 하다. 배우 김혜수는 저자와 작업한 과거 화보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며 “언제나 소년, 오래전 그와의 작업”이라고 저자를 소개했다.
윤여정, 고현정, 최지우 등 카리스마 배우들이 모인 영화 ‘여배우들’은 저자의 스튜디오에서 화보 촬영을 하는 여배우들의 하루를 담았다. 이 영화에서 그는 가장 잘나가는 포토그래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개봉 기념 화보를 찍을 때 그는 배우들의 나이, 작품들, 퍼스널 컬러, 평소 습관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스토리텔링을 넣어 서사를 구현했다. 흑백사진으로 기록하는 ‘한국문화예술명인전’ 작업을 하며 백남준부터 이어령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명인과 호흡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진가로서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우직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클라이언트(고객)가 원하는 것을 담아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는 완벽주의자인 그는 ‘스토리텔링’ 요소를 만들어 독보적인 그의 전문성을 드러냈다.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10주년 기념 전시를 의뢰한 제주도의 풍경을 제대로 찍기 위해 1년간 1만 여장의 사진과 132개의 비디오 클립으로 제주 풍경을 담았다.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섬과 골목마다 위치한 나무 등이 그의 사진기에 담겼고, 해비치호텔뿐만 아니라 중국 상하이와 일본 도쿄에서도 그의 사진이 전시됐다.
저자는 “아름다움 자체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왔는가를 함께 들려주면 작품의 의미와 가치가 훨씬 높아진다고 믿는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단순히 상업 광고 외의 예술사진 분야에서도 그만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지난 2020년 물밑에서 바라본 연잎을 찍으면서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을 표현한 이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종교나 철학에서 이상적 경지를 표현한 전시 ‘피안’을 통해서 연의 고결함을 담았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고고히 피어난 연꽃을 프레임에 담으며 ‘다른 세상에서 나를 보다’라고 표현했다. 사진가로서 명성을 쌓은 후에도 예술사진전, 설치 미술 전시 ‘모던보이’ 등을 열며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저자 김용호는 보그(VOGUE), 지큐(GQ) 등 잡지를 통해 시대의 대표작으로 기록된 패션 사진 작업을 해왔으며 현대카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KT 등 수많은 기업 광고 사진을 통해 독특한 시선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다.
그가 40년간 구상했던 스토리텔링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그의 통찰력, 그가 사진가를 넘어서 사진작가가 된 길을 책에서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