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 손관승 지음 | 황소자리 | 17,000원
작은 소재 하나를 가지고도 문화사 정신사 세계문명교류사 등을 망라하여 쉼없이 떠들 수 있는 사람을 속칭 ‘구라’라고 한다. 지식과 경험은 물론 풍부한 사례와 유머를 가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칭찬이다.
‘한반도에 와인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쓸데없는 호기심에서 시작해 과메기 만드는 청어를 모티브로 <하멜표류기>를 재해석하여 동서양 문명교류사의 한 조각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면 그도 ‘구라’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괴테와 함께 한 이탈리아 여행>을 쓴 작가 손관승의 최신작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를 읽고 ‘참, 구라빨 세다’라고 감탄을 했다. 손작가는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철학으로 어릴 때부터 메모와 수집, 보관을 평생의 습관으로 가졌다.
그는 학생증 사원증은 물론 중국과의 공식 수교 전에 중국 취재 때의 항공기 탑승권, 영수증 등도 보관하고 있다. 마치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받은 영수증을 모두 보관한 것처럼.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는 오랫동안 박지원의 <열하일기>,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하멜표류기> 등 외국 문물 체험과 문명교류에 대해 탐구를 해 온 손관승 작가가 문화방송 베를린 특파원으로 유럽을 누비며 보고 듣고 공부하고 메모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품었던 호기심과 발로 현장을 누비며 세밀하게 조사하는 기자로서의 철저함이 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손작가는 <하멜표류기>를 ‘1653년 8월16일 제주도에 난파되어 1666년 9월 14일 나가사키로 탈출’하는 하멜의 단순한 자기 활동 기록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하멜이 탔던 배 ‘스뻬르베르’호가 난파되어 제주에 도착한 지점부터 하멜 일행이 가장 오랫동안 생활했던 강진의 병영마을, 여수 등을 직접 답사하며 작은 흔적에서 17세기 문명교류사를 포착했고, 하멜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워야할 리더십의 핵심을 끄집어 냈다.
글은 술술 읽힌다. 가끔 작가의 지식의 양을 과시하는 ‘잘난 체' 또한 재미와 상식을 채우는 기쁨을 준다. 하멜의 조국 네덜란드를 강국으로 만든 ‘청어'의 흔적을 강진의 돌담에 있는 ‘헤링본' 문양과 연결시키는 그의 상상력을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증명하기도 한다.
손작가는 하멜의 난파부터 조선에서의 억류생활, 귀환의 전 여정을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 견준다. 오디세이아가 서양의 정신사에서 모험과 불굴의 도전, 용기를 주는 작품이라면 손작가는 하멜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여간 겪었던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한 개인으로서는 청어, 와인 등 일상의 작은 대상을 소재로 17세기 중반 조선과 서양의 문명교류사를 펼치며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들을 이끌어 내는 작가의 이야기 전개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