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해킹 사고를 당한 SK텔레콤이 최근 열흘간 가입 해지 시 약정 위반 위약금 면제를 허용했지만, 실제 가입자 감소는 7만여명 안팎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사의 대규모 판촉 활동에도 불구하고 위약금 면제로 인한 번호이동 대란이 없었다는 게 통신업계의 분석이다. 요금과 멤버십 제휴 할인을 확대한 SK텔레콤의 집토끼(기존 고객) 수성 전략이 효과도 본 데다, 단말기 할부금 일시납과 가족결합 해지에 부담을 느낀 가입자들이 번호이동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위약금 면제 기간 가입자 순감 7만명대… “선방한 SK텔레콤”

15일 통신업계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해킹 사고가 알려진 지난 4월 22일부터 이달 14일까지 SK텔레콤 가입자 순감 규모(알뜰폰 제외)는 60만1376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7245명씩 가입자가 줄어든 셈이다. SK텔레콤이 해지 위약금 면제에 들어간 이달 5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집계된 가입자 순감 규모는 7만9171명으로, 하루 평균 7917명씩 가입자가 감소하는 것에 그쳤다.

당초 위약금이 면제되면 대규모 가입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SK텔레콤이 선방했다는 이야기가 통신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위약금을 면제하면 최소 250만명에서 최대 500만명의 고객이 이탈할 것이라는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의 우려도 해소됐다. 유 사장은 최대 500만명이 이탈할 경우 3년간 7조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 단말기 할부금 일시납 부담·가족결합 탓 타사 이동 포기

통신업계는 위약금 면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 가입자들의 번호이동 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원인으로 단말기 할부금 일시납 부담을 꼽는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위약금을 면제해준다고 해도 다른 통신사로 넘어가려면 할부로 납부 중인 단말기 대금을 일시에 완납해야 한다”면서 “100만~200만원에 달하는 고가 단말기 대금 결제에 부담을 느껴 이동을 하지 못한 가입자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SK텔레콤의 가족결합 할인제도도 타사 이동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한 이동통신 유통점 관계자는 “가족결합 할인이 묶여 있어 포기하고 돌아가는 고객들이 많았다”고 했다. 또다른 유통점 관계자는 “위약금 면제 기간에 SK텔레콤을 쓰는 가족 전체가 KT로 번호이동을 하려고 방문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부모님이 세 달 전 폰을 바꿔 일시 완납해야 할 단말기 대금이 100만원이 넘었다. 자녀들도 가족결합 할인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SK텔레콤에 남았다”라고 했다.

◇ 요금·멤버십 할인 효과 ‘톡톡’… ‘갤럭시Z 7’ 출시 전 위약금 면제 종료

기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SK텔레콤의 통 큰 마케팅 전략도 가입자 감소에 기여했다. SK텔레콤은 8월 통신요금 50% 할인, 올해 12월까지 매달 데이터 50기가바이트(GB) 추가 제공, 주요 멤버십 브랜드 50% 할인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KT와 LG유플러스에서 SK텔레콤으로 번호이동을 한 고객들에게도 동일한 서비스 제공을 약속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공짜폰을 받고 파격적인 할인 혜택까지 받으면서 SK텔레콤으로 옮기려는 수요를 키웠다”면서 “위약금 면제 기간 막바지에 KT와 LG유플러스에서 SK텔레콤으로 넘어가는 고객이 급증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위약금 면제 기간 중 SK텔레콤에서 KT와 LG유플러스로 이탈한 가입자 수는 16만6441명이었지만, SK텔레콤이 KT와 LG유플러스에서 8만7270명을 유치해 가입자 감소를 만회했다.

위약금 면제 기간 중 통신사간 판매장려금(리베이트) 출혈 경쟁으로 ‘갤럭시S25′ ‘아이폰16′ 등 공짜폰이 대거 풀렸지만, ‘갤럭시Z 7’ 시리즈를 아직 출시하지 않아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대기 수요자들의 번호이동이 없었다는 점도 SK텔레콤이 선방할 수 있었던 이유로 꼽힌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SK텔레콤이 위약금 면제 기간을 갤럭시Z 7 시리즈 출시 전 종료되게 잡은 점이 가입자 감소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면서 “만약 이 기간 중 삼성 신형폰이 출시되고, 단통법까지 폐지가 됐다면 가입자 감소 규모가 커졌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