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 마벨이 대만 TSMC와의 3㎚(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공정 협력 계획을 밝힌 가운데, 차세대 광(光) 반도체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TSMC의 실리콘 포토닉스 공정도 활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점유율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레거시(구형)부터 첨단 공정까지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굳힌 TSMC는 인공지능(AI) 성장세와 맞물려 차세대 파운드리 격전지로 부상한 주문형 반도체 제조 시장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주문형 반도체는 특정 기능에 특화한 맞춤형으로 설계된 반도체다. 범용으로 설계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비 가격과 전력소모, 총 투자비용이 낮아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JP모건 등에 따르면 이 시장에서 브로드컴이 55~6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해 1위를, 마벨이 15% 수준의 점유율로 뒤를 잇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마벨이 출시하는 차세대 AI 주문형 반도체에는 TSMC의 3㎚와 2㎚ 공정이 활용될 계획이다. 마벨은 지난해부터 TSMC의 3㎚ 공정을 활용해 대량 양산을 개시한 바 있다. 차세대 제품에는 TSMC의 2㎚ 공정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간 데이터 통신을 전기에서 빛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신호 처리 속도를 10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기술인 실리콘 포토닉스를 활용해 성능을 고도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마벨은 AI 시장 개화와 함께 주문형 반도체 시장 강자로 부상했다. 마벨은 지난 2021년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주문형 반도체를 최초로 수주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메타와 주문형 반도체 설계 계획을 발표했다. 매튜 머피 마벨 최고경영자(CEO)는 “대형 클라우드 업체와 3번째 주문형 반도체 계약을 조만간 맺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벨의 지난해 매출액은 57억6000만달러(약 7조9344억원)로 이 중 15억달러 이상이 AI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관련 매출이 25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브로드컴에서 설계되는 반도체의 70% 이상을 양산하는 TSMC는 마벨과의 협력을 강화해 급성장하고 있는 주문형 반도체 시장도 선점할 방침이다. 시장조사업체 코히어런트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주문형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202억9000만달러(약 29조원)로, 오는 2031년까지 약 328억4000만달러(약 47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경제일보는 “마벨은 TSMC 3㎚ 공정을 사용하여 제조된 데이터센터 칩을 출시했고 양측의 협력을 2㎚ 공정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며 “마벨의 맞춤형 AI 칩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TSMC의 투자도 증가해 첨단 공정 수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TSMC와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도 주문형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TSMC의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7.6%로 압도적인 1위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7.7%로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브로드컴, 마벨 등과 첨단 공정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 중”이라면서도 “다만, 제품 양산을 위해선 수율 향상 및 성능 제고 등 기술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