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AI 미래기획수석./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 초대 인공지능(AI) 미래기획수석에 하정우(48)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을 임명했다. 예상을 벗어난 깜짝 인사였다. 국가 AI 전략과 예산을 이끌 인물로 40대 기업인을 임명한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현장 중심 AI 정책으로의 전환 신호”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 수석이 이 정부의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로드맵을 설계하는 중책을 맡게 되면서 그가 그동안 강조해온 ‘소버린(sovereign·주권) AI’ 청사진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AI 업계 대변인으로 맹활약…“민간 의견 반영 기대감”

16일 AI 업계에 따르면 하 수석이 대통령실로 가면서 민간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 수석은 네이버클라우드 센터장 시절 AI 업계 대변인으로 활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그동안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국내 AI 업계가 직면한 문제와 고민, 필요한 정책 등에 대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왔다. 정부와 국회, 민간 기업 등에서 열린 각종 토론회, 강연, 세미나 등에도 활발하게 참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하 수석은 대외적으로 업계의 고충을 가장 적극적으로 알려온 인물 중 한명”이라며 “현장 경험이 있는 민간 AI 전문가가 국가 AI 전략을 맡게 돼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하 수석이 ‘현장을 잘 아는’ AI 전문가로 통하는 만큼, 이번 정부의 AI 정책도 시장 친화적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부산 출신인 하 수석은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석사·박사를 마친 토종 AI 전문가다. 지난 2015년 네이버의 연구개발(R&D) 자회사 네이버랩스에 입사해 AI 연구를 했고 네이버 클로바 AI 리서치, 네이버 AI랩,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 등을 거치면서 한국어에 특화된 대규모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평소 AI 윤리와 정책 분야까지 폭넓게 활동해왔다. 하 수석은 과학기술인 시민단체인 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AI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 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내왔다. 과실연의 ‘AI 미래포럼’ 소장을 맡아 지난해 소화한 AI 강연만 800회가 넘는다. 최근에는 광주 인공지능사관학교의 제6기 교장을 맡아 지역 청년들을 위한 실무형 인재 양성에도 나섰다.

하 수석은 지난 5월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새 정부에 AI디지털혁신부가 생긴다면 일본처럼 관료보다 민간 전문가로 상당수 채용하고 순환보직 예외로 해서 전문성을 살리되 스타트업처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형태로 운영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하면 2~3년 후 AI 분야에서 일본에 추월당할 뿐 아니라 AI 중진국으로 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과정에서 하 수석은 ‘소버린 AI’ 개념을 널리 알리고 정책 어젠다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버린 AI란 자주적인이라는 뜻의 소버린과 AI를 합친 단어로, 특정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AI를 의미한다. 그는 한국의 문화, 제도, 가치관 등을 반영하는 주권형 AI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 구매해 국가대표 AI 기업 4~5곳에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AI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국가 초지능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미·중 AI 경쟁 심화 환경에서 종속을 우려하는 중진국들의 연대를 한국이 주도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도 하 수석을 낙점한 이유 중 하나로 그의 ‘소버린 AI’ 철학을 꼽았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15일 “하 수석은 소버린 AI 개념을 제안했고, 국가와 기업간 성과를 공유하는 AI 선순환 성장 전략을 강조한 전문가로, 네이버에서 풍부한 실무 경험이 국가 전략 수립에 즉시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며 발탁 이유를 밝혔다.

그래픽=손민균

◇ 소버린 AI 구상 구체화될 듯…“기업 참여 유도하는 정책 필요”

이번 임명으로 하 수석이 평소 주장해온 소버린 AI 청사진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다수 AI 전문가들은 국가 전략 자산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주권형 AI 모델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특히 국방, 의료, 복지 등 분야에서는 해외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의 모델에만 의존하면 정보 유출 위험이 크기 때문에 소버린 AI는 필수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 정부가 공약에서 언급한 민관 합작 투자 방식으로 우수 AI 인재를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렇게 해서 한국형 LLM을 만들어도 수익성을 어떻게 보장할지는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내 한 AI학과 교수는 “공약만 보면 소버린 AI는 공공 서비스 특성이 강한데 향후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고 수익을 내려면 오픈소스 기반 글로벌 서비스를 육성해야 한다”며 “두 가지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세부적인 방향을 잘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추진하는 ‘AI 관련 분야 민관 투자 100조원 시대’ 공약을 실현하려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만 봐도 응찰 기업이 없어 최근 두 차례 유찰됐다. 민간 지분이 49%로 정부 지분율보다 낮은 데다 참여시 득보다 실이 많아 민간 참여자가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