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애니메이션 좀 본다”는 말이 이제는 숨겨야 할 취향이 아닙니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최애의 아이’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10·20대 사이에서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으며, 이들 콘텐츠에 익숙하지 않은 쪽이 소외감을 느끼는 시대입니다. 한때 ‘오타쿠’ 전유물로 취급되던 애니메이션은 이제 백화점이 전용관을 만들고, 포털 메인을 장식하며, 증권사가 리포트를 내는 콘텐츠가 됐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국내 대표 애니메이션 유통사 ‘애니플러스’가 있습니다.

◇ 日 신작 애니메이션 70~80% 유통

애니플러스는 지난해 매출 1310억원, 영업이익 251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NH투자증권은 “오는 8월 개봉 예정인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국내 흥행이 기대되는 가운데, 애니플러스가 해당 판권을 보유하고 있어 기업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애니플러스는 올해 매출 1600억원, 영업이익 3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는 2027년에는 영업이익이 5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예측도 나옵니다. 실적 성장 기대감이 반영되며 지난 13일 기준 주가가 4335원으로, 1년 전 최저가(2390원) 대비 약 81% 상승했습니다. 시가총액은 2100억원을 넘기며 콘텐츠 섹터 내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애니플러스는 원래 C&그룹 산하 생활경제TV로 출발했습니다. 모기업 해체 후 2009년 ‘애니플러스’란 이름으로 채널을 전환하며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으로 개국했습니다. 당시 시장은 CJ E&M(투니버스), 대원미디어(챔프TV) 중심의 구조였지만, 애니플러스는 마니아층을 겨냥한 신작 수입과 자막 동시 방영이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틈새를 공략했습니다. 충성도 높은 팬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입지를 확대했습니다.

현재 애니플러스는 일본 신작 애니메이션의 70~80%를 국내에 유통하며, 약 1400편에 달하는 판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유통·극장 배급·굿즈 판매·전시 기획까지 수직 계열화된 콘텐츠 밸류체인을 구축했으며, 자사 OTT 플랫폼 라프텔은 국내 유일의 흑자 애니 전문 서비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지난 2023년에는 경쟁사 애니맥스를 인수해 케이블 채널 점유율을 8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애니맥스는 ‘귀멸의 칼날’ ‘하이큐’ 등 독점 콘텐츠를 바탕으로 55%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실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사업은 유통을 넘어 제작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애니플러스는 자회사 라프텔을 통해 ‘붉은 여우’ ‘피라미드 게임’ ‘위험한 편의점’ ‘호랑이 들어와요’ 등 인기 웹툰을 기반으로 한 시리즈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했으며, 올해 순차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미 ‘시맨틱 에러’ ‘4주 애인’ ‘슈퍼 시크릿’ 등 다수의 웹툰 기반 애니화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기획부터 제작·유통·굿즈로 이어지는 IP 밸류체인 완성이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 애니플러스 주최 AGF, 게임사 참여 늘고 매년 성장세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소비 환경 변화가 애니메이션 산업 전반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OTT 확산으로 콘텐츠 접근성이 높아졌고, 원작 만화 전시·굿즈 소비·팬미팅 등으로 이어지는 팬덤 소비가 일상화됐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지난해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일러스타 페스’에는 1일 관람 인원 제한선인 9000명을 초과하는 인파가 몰렸고, 2차 창작 굿즈 판매 부스와 코스프레 공연 등은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애니플러스가 주축이 되어 매년 개최하는 AGF(Anime x Game Festival)에도 지난해 역대 최대인 75개 업체가 참가했습니다. AGF는 애니플러스, 대원미디어, 소니뮤직, 디앤씨미디어가 공동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 서브컬처 전시 이벤트입니다. 메인 스폰서를 맡은 스마일게이트를 비롯해 넷마블, 네오위즈, 라이온하트, 시프트업, 위메이드커넥트, 클로버게임즈 등 주요 게임사들의 참여가 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AGF 같은 서브컬처 행사는 캐릭터 IP의 세계관과 팬덤 소비를 연결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며 “지스타가 B2B(기업대기업)·신작 홍보 중심이라면, AGF는 굿즈, 코스프레, 팬미팅 등 팬 기반 콘텐츠 소비가 중심인 실질적 2차 콘텐츠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애니메이션 산업을 전략 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한 지원에 나섰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9년까지 1500억원 규모의 애니메이션 특화 펀드를 조성해 기획·제작·유통 전 과정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일정 기준 이상의 국내 제작 비율을 충족할 경우 제작비 일부를 환급하는 인센티브 조항도 도입했습니다. 문체부는 이를 통해 어린이 중심의 애니메이션 구조에서 벗어나 전 세대 콘텐츠, 인공지능(AI) 영상, 숏폼 등으로 저변을 넓히겠다는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