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위키피디아가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밀려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예전에는 찾고 싶은 정보가 있을 때 ‘검색→위키피디아에서 정보 확인’ 절차를 거쳤지만, 지금은 AI 챗봇이 정보를 정리·요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위키피디아에 들어갈 유인이 적어졌습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챗GPT의 월간 웹 트래픽은 위키피디아 트래픽(방문자)을 처음으로 넘어섰습니다. 업체마다 집계 방식과 수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영국 GWI를 포함한 다수의 트래픽 분석 업체들은 지난 4월을 기점으로 챗GPT 방문자가 위키피디아를 추월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만 놓고 보면 챗GPT의 월간 트래픽은 가파르게 성장해 지난 4월 7억8000만건을 기록한 반면, 위키피디아는 7억1600만건으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미국 IT전문매체 퓨처리즘은 최근 관련 수치를 보도하면서 “충격적인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2001년 지미 웨일스가 ‘지식의 민주화’를 꿈꾸며 세운 위키피디아는 세계 최대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위키피디아는 외부 전문가와 일반인이 새 정보를 추가하거나 기존에 올라온 정보를 편집하면 운영자 검증을 거쳐 반영하는 ‘열린 편집’ 원칙하에 운영됩니다.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정보의 정확성을 검토·수정하는 편집자만 26만명에 달합니다. 웨일스는 위키피디아를 통해 “누구나 인류의 모든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철학을 반영해 비영리 단체인 위키미디어 재단이 위키피디아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고 중립적인 지식의 보고’를 표방하는 위키피디아가 AI에 밀리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업체 시밀러웹 등에 따르면 2022년부터 3년간 위키피디아의 총 트래픽은 월평균 11억건 이상 감소했습니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2022년 3월 1억6500만명에서 올해 3월 1억2800만명으로 줄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웹사이트 중 방문자가 7번째로 많았던 위키피디아는 순위가 8위로 한 단계 떨어졌고, 챗GPT는 6위로 올라섰습니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챗GPT와 같은 AI 챗봇을 활용한 ‘제로 클릭(zero-click)’ 검색 형태가 확산하면서 위키피디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제로 클릭이란 사용자가 검색 결과에 제공되는 외부 사이트로 이동하지 않고 검색한 페이지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트럼프 관세 정책’을 검색하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나 위키피디아 페이지로 이동해야 했지만, 챗GPT는 관련 정보를 정리하거나 요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외부 페이지를 클릭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구글 검색을 하면 관련 위키피디아 페이지가 상단에 떴는데, 지금은 구글 제미나이가 요약해주는 ‘AI 오버뷰’를 최상단에 배치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오픈AI가 챗GPT를 개발할 때 사용한 주요 학습 데이터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챗GPT는 위키피디아에서 학습·추출한 자료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질의나 요청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위키피디아 페이지 방문은 줄어들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AI 챗봇의 대중화로 검색 환경이 바뀌면서 위키피디아뿐만 아니라 다른 지식 공유 플랫폼들도 트래픽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미국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 2월 발간한 ‘굿바이 클릭, 헬로 AI’ 보고서에서 “소비자의 약 80%가 검색의 최소 40% 이상을 ‘제로 클릭’ 결과에 의존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검색 엔진에서 이뤄지는 전체 검색의 60%는 사용자가 다른 웹사이트로 이동하지 않고 끝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이트를 클릭하는 트래픽이 약 15%에서 25% 감소했다고 추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