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제조업에 필요한 핵심 광물인 중국산 희토류 확보를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반도체 수출 제재 완화를 협상 카드로 꺼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지난달 말 단행한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 수출 중단 조치는 이미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케빈 하셋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9일(현지시각) 미·중 대표단의 런던 무역 회담을 앞두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크고 힘찬 악수로 마무리되는 짧은 회의가 되길 기대한다”며 “악수 직후 미국의 수출 통제가 완화되고 (중국의) 희토류가 대량으로 공급되는 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중 수출 통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의지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하셋 위원장은 어떤 수출 통제의 수위를 낮출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는 현행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향후 트럼프의 대중 반도체 정책이 시간이 갈수록 고삐를 죄던 바이든 행정부의 방식과는 차이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측은 중국이 희토류의 대미 수출 제한을 완화하는 조건으로 중국을 겨냥한 기술 수출 통제를 일부 해제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협상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제트기 엔진 부품, 화학 및 원자력 소재 등에 대한 수출 통제를 해제할 준비가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날 “우리는 중국을 개방시키고 싶다”면서 “중국이 오랫동안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우했지만 내가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기 전까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중국에 대응할 용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중 대표단은 이날 런던 회담에서 6시간 이상 대화했고, 다음날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가 적용되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이미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달 말 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자동화(EDA) 소프트웨어에 대한 중국 기업의 접근을 막았다. 이에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시놉시스, 지멘스 등은 중국 고객사에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다.
그런데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통화 이후, 업계에서는 미국발 EDA 수출 규제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칩 설계 기업들에 막혔던 케이던스, 시놉시스 등의 기술 지원 플랫폼이 현재 상당 부분 정상화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들 기업이 서비스 재개를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수출 규제 여파로 지난달 말 12%가량 급락한 케이던스, 시놉시스의 주가도 낙폭을 각각 6%포인트(P), 8%P 만회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규제 상황이 개선된 것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도 고성능 칩을 제외한 반도체 규제는 확 조였다가 숨통을 틔워주는 방식의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