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

중국이 3년 내 인공지능(AI) 칩 자급률 8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수출 통제가 중국 AI의 아킬레스건을 노린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생태계 체력을 끌어올리는 자극제 역할을 한 분위기입니다. 중국은 자체 AI 칩으로 구동되는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자국산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무장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하는 등 ‘기술 독립’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중국 AI, 잠자는 거인이 깨어난다’는 제목의 최신 보고서에서 중국의 AI 칩 자급률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34% 수준이었으나 오는 2027년 82%까지 수직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미국의 제재가 없었다면 엔비디아 등 해외 칩에 계속 의존했을 중국이, 외부의 압박에 완전한 자립을 향한 총력전을 펼쳤고 예상보다 빠르게 자급자족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게 모건스탠리의 분석입니다.

폭발적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인재’입니다. 중국에는 전 세계 AI 연구 인력의 절반가량이 있습니다. 중국은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자립 생태계 구축 전략을 펼쳤습니다. 당장 최상위 칩 공급이 막히자, 중국은 엔비디아 주력 AI 칩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인 H20 등을 대량 확보하는 동시에, 이를 여러 개 묶어 성능을 극대화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습니다. 오픈소스 모델인 딥시크-R1은 GPT-4o 대비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AI를 구현하며, 하드웨어의 열세를 소프트웨어의 지략으로 극복하는 중국식 해법의 상징이 됐습니다.

돈도 풀었습니다. 중국은 AI 생태계에 막대한 연구·개발(R&D) 자금을 쏟아부었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활용해 ‘공공기관 우선 구매’로 자국 기업을 뒷받침했습니다.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AI 칩 ‘어센드 910′ 수천 개로 구성된 ‘수퍼클러스터’를 통해 매개변수 1조개 이상의 AI 모델 훈련 시스템을 선보이며 엔비디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 SMIC는 7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의 벽을 넘어서며, 화웨이가 설계한 AI 칩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대체재 활용 → 내수 시장 창출 → 자체 개발 가속화 → 양산’으로 이어지는 자립의 선순환 고리가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AI 두뇌’의 자립은 단순히 칩 생산을 넘어 미래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오는 2050년 5조달러(약 6900조원) 규모로 성장할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대표적입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이 AI 칩과 핵심 부품의 자체 조달로 확보한 원가 경쟁력을 무기로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보급량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중국 공급망을 활용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 경우, 제조원가가 글로벌 공급망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추정치까지 나왔습니다.

중국의 AI 굴기를 이끄는 기업들은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화웨이와 SMIC뿐 아니라 AI 플랫폼 경쟁을 이끄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을 비롯해 로봇 가전 회사 에코백스,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 호라이즌 로보틱스 등이 AI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모건스탠리는 평했습니다. 이런 견고한 생태계를 통해 중국의 핵심 AI 산업은 2030년 1조위안(약 19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중국의 사례는 AI 패권 전쟁의 성공 방정식이 바뀌고 있다는 걸 방증합니다. 최고 사양의 반도체 칩 확보가 곧 시장 지배력으로 직결된다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소 부족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으로 효과적으로 엮어내 가치를 창출하는 ‘생태계의 힘’이 경쟁의 핵심 변수가 된 것입니다.

한국의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AI는 큰 화두였습니다. 하지만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적으로 혈세를 얼마나 쏟아부을지만 부각됐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 정부가 인재를 잡고 기업을 북돋우며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기술 생태계 조성에 전략적인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기대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