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가 미국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과 함께 군사용 장비를 개발한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개인 소셜미디어(SNS)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메타가 국방 분야로 사업을 넓히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으로 풀이된다.
안두릴은 메타가 2014년 인수한 가상현실(VR) 기기 자회사 오큘러스 VR의 창업자인 팔머 럭키가 세운 방산 기술 회사다. 메타는 8년 전 해고한 럭키 창업자와 껄끄러운 사이임에도 이번 협력에 적극 나섰을 정도로 방산 분야로의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메타, 방산 진출 본격화… 안두릴과 군용 장비 개발
2일 IT 업계에 따르면 메타와 안두릴의 협업은 국방 분야에 눈독을 들이는 빅테크 기업의 최근 행보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미군이 인공지능(AI) 기술을 군사력에 접목하는 등 최첨단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 빅테크도 방산업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메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안두릴과 미군용 장비 개발을 위한 협력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AI 기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능이 탑재된 미군용 헬멧, 고글 등 웨어러블 기기를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현재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이글아이(EagleEye)’라 불리는 고성능 웨어러블 헬멧이다. 이 장비는 병사들의 청각과 시각 능력을 향상시키는 센서를 탑재할 예정이다. 수 ㎞ 밖에서 날아오는 드론을 탐지하거나 은폐된 목표물을 포착할 수 있다. 안두릴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메타의 AI 모델 ‘라마’가 적용된다.
양사는 최대 약 1억달러(약 1300억원) 규모 VR 하드웨어 장비 관련 미 육군 계약에도 공동 입찰했다. 두 기업은 이번 계약을 수주하지 못하더라도 헤드셋 개발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메타는 지난해부터 국방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준비해 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메타는 지난해 11월 AI 모델 라마를 군사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미 국방부 출신 인사들도 다수 영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메타는 그동안 자사 AI 모델 라마와 VR 사업부인 ‘리얼리티 랩스’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고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융합하는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 몰입형 헤드셋을 수차례 개발했다”며 메타가 안두릴과의 협력에 관련 기술을 대거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는 지난 10년 동안 AI와 AR 기술을 개발해왔다”며 “이 기술을 국내외에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미군 장병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안두릴과 협력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타는 2014년 오큘러스 인수 이후 지난해까지 VR, A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등 관련 기술에 800억달러(약 110조원) 이상을 투자했고, 올해 말까지 추가로 200억달러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메타에서 VR 기술과 스마트 안경을 담당하는 사업부인 리얼리티 랩스는 2020년 설립 이후 장기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지난 1분기에도 42억달러(약 5조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미 국방 예산이 1조달러(약 137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메타가 국방 분야로의 진출을 통해 만년 적자인 VR 사업에서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AI로 무장한 전장… 구글·오픈AI·MS도 참전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전략은 중국 견제와 미국 본토 방어 강화, 첨단 기술 적용을 통한 군 현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군이 상용 소프트웨어와 스타트업의 최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할 것을 권장했다.
그 일환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약 1750억달러(약 240조원) 규모의 ‘골든돔’ 미사일 방어체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지상 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패트리엇·사드(THAAD) 체계 등에 더해 우주 기반 센서, AI 지휘 체계, 요격체 등을 포함한 다층적 방어망이다. 메타와 손잡은 안두릴은 골든돔 건설에 참여할 유력 후보 중 하나로 지목된다.
주요 테크 기업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관련 사업부를 키우고 안두릴과 같은 군사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 육군 전용 맞춤형 홀로렌즈 헤드셋 12만개를 제작하는 미 육군 통합 시각 증강 시스템(IVAS) 계약을 지난 2021년 체결했다. MS는 헤드셋 제작에 어려움을 겪어 최근 이 사업을 안두릴에 이전했지만, IVAS에 자사 클라우드와 AI 기술은 계속 제공하기로 했다.
직원 반대가 거세 방산업에 소극적이었던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최근 입장을 국방 친화적으로 바꿨다. 구글은 연초 자사 AI 기술을 ‘군사·전쟁·핵 관련 산업·스파이 활동 등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을 철회했다. 구글은 자사 ‘AI 원칙’ 웹페이지에 게시했던 서약을 삭제하면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작성한 블로그 글도 게시했다. 그는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국가 안보를 지원하는 AI”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구글은 아마존과 공동으로 참여 중인 이스라엘 정부의 AI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 사업인 ‘프로젝트 님버스(Project Nimbus)’에서 철수하라고 시위한 직원 50여 명도 해고했다.
AI 기업들도 관련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안두릴과 협력해 자사 AI 기술을 미군의 드론 공격 대응 시스템에 접목하기로 했다.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히는 앤트로픽은 국방 관련 AI 전문 기업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와 손잡고 자사의 AI를 미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WSJ은 “오픈AI와 같은 AI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전쟁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며 “테크 업계와 국방부는 미래의 전쟁이 소규모 AI 기반 자율 무기 시스템에 의존할 것이라고 보고 미군이 중국 등과의 잠재적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더 강력한 AI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