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미디어 세션에서 답변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중국이 AI(인공지능) 칩을 만들 수 없다는 가정하에 정책을 수립해 왔으나, 이는 명백히 틀렸다. 중국은 이미 AI와 막대한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AI 연구원의 절반이 중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AI를 갖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세계 최대 AI 시장에서 누가 플랫폼을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중국에서 성공하는 플랫폼이 결국 AI 경쟁에서 세계를 선도하게 된다.”

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가 트럼프발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규제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의 중국 견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황 CEO는 28일(현지시각) 2026 회계연도 1분기(2~4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대중 수출 규제로 회사가 500억달러(약 70조원)에 이르는 중국 AI 시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엔비디아는 당장 2분기(5~7월) 중국 판매 제한으로 인한 손실이 10조원 이상으로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중국 시장에서 경쟁할 다른 제품 개발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 수출 규제 여파 현실화… “中 AI 시장 포기하면 70조원 손해”

대중 AI 칩 수출 규제로 엔비디아가 올 1분기에 입은 직접적인 피해는 수조원에 이른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 4월 9일 엔비디아가 중국에 판매하던 AI 칩(H20) 수출을 제한했다. 엔비디아는 H20 칩 재고 처분 등으로 45억달러(약 6조원)를 비용 처리했고, 매출 기준으로는 25억달러(약 3조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이 여파로 매출 총이익률(원가를 제외한 매출의 비율)은 당초 예상했던 71.3%에서 60.5%로 낮아졌다.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이전 (바이든) 행정부의 승인을 받아 H20을 중국 시장에 판매해 왔으나, 새로운 H20 관련 수출 통제 조치는 회사가 재고를 소진할 유예 기간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피해는 2분기에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크레스 CFO는 “1분기 데이터센터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H20 수출 통제로 회사 예상치를 밑돌았고 전분기 대비 감소했다”며 “2분기에는 중국 비중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12%를 차지했던 중국 시장의 기여도가 앞으로 더욱 축소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로 인해 2분기에는 80억달러(약 11조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결과 엔비디아가 예상한 2분기 전체 매출은 450억달러(약 62조원)로, 시장 전망치인 459억달러(약 63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엔비디아는 새로운 중국 수출용 제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며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크레스 CFO는 “중국에 규제를 준수하는 데이터센터 컴퓨팅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제한적인 방안을 여전히 검토하고 있다”면서 “500억달러(약 70조원) 규모로 성장할 중국 AI 가속기 시장을 잃는 것은 회사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중국 및 해외 경쟁사들에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가 이르면 올 하반기 중국용 저전력·저사양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폭발적인 AI 가속기 수요가 中 손실 일부 상쇄

중국발 타격은 피할 수 없었지만, 엔비디아는 AI 추론 수요 급증에 힘입어 최신 ‘블랙웰’ AI 가속기가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블랙웰의 높은 수요가 중국 시장에서의 매출 손실을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1분기 엔비디아 매출의 88%는 AI 칩을 포함하는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나왔는데, 이 중 70%가 블랙웰 수요였다.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391억달러(약 54조원)로, 시장 예상치(392억달러)에 근접했다.

크레스 CFO는 “추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가령 마이크로소프트(MS)는 1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5배 증가한 100조개 이상의 토큰을 처리했다”며 “이번 분기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이미 수만 개의 블랙웰 GPU를 배포했으며, 주요 고객 중 하나인 오픈AI와 함께 (블랙웰이 탑재된) GB200 제품을 수십만 개까지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GB200보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50% 더 많이 탑재한 고부가 제품 GB300 GPU도 2분기 후반부터 본격 출하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에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이른바 ‘AI 팩토리’ 구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초기 단계인 AI 인프라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레스 CFO는 “2분기 현재 약 100개의 엔비디아 기반 AI 팩토리가 건설 중인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한 수치이며 각 팩토리에 공급하는 평균 GPU 수도 2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황 CEO는 “거의 모든 국가가 AI 인프라를 필수적으로 구축하려 하며 현재는 그 시작점”이라고 진단했다.

대중 규제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이 미국의 AI 플랫폼을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황 CEO는 “중국의 AI는 미국 칩이 있든 없든 계속 발전하고 있고, 오히려 수출 제한이 중국의 혁신과 규모 확대를 촉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수출 통제는 미국 플랫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중국에 있는) 세계 AI 인재의 절반을 딥시크와 같은 경쟁사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올해 초 미 제재를 뛰어넘어 저비용·고성능 AI 모델을 무료로 내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황 CEO는 “딥시크처럼 인기 있는 모델이 미국 인프라에서 가장 잘 실행될 때 미국이 승리한다”며 현행 대중 견제 조치의 전략적 허점을 재차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