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구직 시장에서 신입사원 채용이 빠르게 줄고 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초급 업무가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되면서, 기업들은 경력직 위주로 채용 전략을 재편 중이다. 특히 빅테크의 감원마저 맞물리며, 신입에게 일자리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27일(현지시각) 미국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주요 빅테크 15개 기업의 대학 졸업 예정자 채용은 전년 대비 25% 줄었다. 같은 기간 스타트업의 신입 채용도 11% 감소했다. 반면 경력 2~5년차 인재 채용은 각각 27%,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셔 밴톡 시그널파이어 리서치 책임자는 “초급 직무는 위험 부담이 낮고 반복적이어서 AI 자동화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며 “AI가 채용 축소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변수”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물류기업 UPS는 지난달 말 116년 역사상 최대 규모인 2만명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AI와 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가 감축 배경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핀테크 기업 클라나는 오픈AI와 제휴하고 AI 어시스턴트를 도입, 약 700명의 업무를 대체했다. 글로벌 언어 학습 서비스 기업 듀오링고는 올 상반기 위탁 계약 인력 10%를 정리하며 AI 기반 콘텐츠 제작으로 전환 중이다. 재무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인튜이트는 지난해 약 1800명을 해고하고 AI 중심 전략에 집중하고 있으며, 시스코도 같은 해 전체 인력의 7%에 해당하는 5900명을 감원하며 AI 및 사이버보안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AI 기술 고도화는 이러한 채용 구조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히는 AI 기업 앤트로픽은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 행사 ‘Code with Claude’에서, 신형 모델 ‘오푸스4(Opus 4)’를 공개했다. 오푸스4는 인간의 지시 없이도 7시간 연속 코딩·기획·데이터 분석 등의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6개월 내 전체 코드의 90%를 AI가 작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 시장을 이끌고 있는 주요 빅테크들도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달 초 6800명을 해고했으며, 이 중 40%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전체 코드의 30%를 AI가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고,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2026년이면 개발 업무의 절반이 AI에 의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컴퓨터 개발자 고용은 27.5% 줄었고, 관련 채용 공고도 35% 감소했다. 신입 개발자에게 단순 코딩 이상의 기획·설계 능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헤더 도셰이 시그널파이어 인사 파트너는 “AI가 당신의 자리를 직접 빼앗지는 않지만, AI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4월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2025’ 보고서에서 “전체 고용주의 40%가 AI로 자동화 가능한 직무에서 인력 감축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시장조사, 기술지원, 콘텐츠 기획 등이 집중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Z세대의 49%는 “AI로 인해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고 응답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신입 정기 공채를 축소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가 뚜렷해졌으며, 특히 판교 등 주요 IT 산업 밀집 지역에서는 경력직 중심의 이동이 일반화되고 있다.

물론 AI가 모든 직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맥킨지는 “기획·브랜딩·사고 기반 의사결정은 AI가 가장 늦게 대체할 분야”라고 분석했다. 구글은 생성형 AI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AI 프롬프트 기획자’ ‘AI 리스크 매니저’ 등 새로운 직무를 신설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테크 팟캐스트 ‘하드 포크(Hard Fork)’에서 “앞으로 5~10년 내 AI가 수많은 일자리를 바꿔놓을 것”이라며 “Z세대와 알파세대는 AI를 도구처럼 자유자재로 다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이 밀레니얼을 만들고, 스마트폰이 Z세대를 만들었다면, 생성형 AI는 알파세대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