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각) ‘해외 생산 스마트폰’에 최소 25%의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전자의 대응 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관세 부담을 떠안거나, 미국 현지에 스마트폰 제조 공장을 짓는 것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요 스마트폰 생산 거점인 베트남과 한국 등에 높은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지난달부터 미국 시장 대응 방안을 두고 손익 계산에 골몰하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국제 정세를 예의주시하면서 미국 스마트폰 공장 신설부터 관세가 낮은 국가로 미국 수출 물량을 이전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대응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이 ‘인도 혹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제조되기를 바란다’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오래전 전했다”면서 “애플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최소 25%의 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세 정책이 “삼성이나 제품을 (해외에서) 만드는 다른 기업에도 해당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관세 부담’이나 ‘현지 공장 신설’ 등 어떤 대응안을 택하더라도 타격이 불가피해 “딜레마에 빠졌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관세 정책에 대응하는 방안이 나와야 삼성전자가 움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 美서 스마트폰 3000만대 팔아… 관세 흡수 시 4조 안팎 손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작년 스마트폰 사업으로 올린 매출은 114조4249억원이다. 증권가에선 이 중 17%에 해당하는 약 25조원이 미국 시장에서 나왔다고 추정한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의 지난 2월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작년 12억2000만대 규모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8.3%(수량 기준)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작년 한해 동안 2억2300만대의 스마트폰을 세계 시장에 판매한 셈이다. 증권가에선 이 중 미국 시장에 약 3000만대가 팔린 것으로 추정한다.
트럼프발 관세가 발효되면 스마트폰 완제품뿐만 아니라 배터리·카메라모듈·반도체 기판 등 부품도 영향을 받아 업계에선 스마트폰 판매 가격에 40~50% 정도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만약 이를 삼성전자가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면 연간 조단위 손실을 볼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베트남 스마트폰 생산기지 이전 없이 관세 부과를 100% 흡수한다면 스마트폰 영업이익의 3분의 1인 4조원이 관세 영향에 노출된다”면서도 “미국과 베트남 정부의 관세 협상 가능성이 열려있어 삼성전자의 관세 타격 강도는 우려 대비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현지 공장 설립이 해법 될 수도”
스마트폰 제조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국에 스마트폰 조립 공장을 짓는다면 3조원 안팎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가 최근 해외에 지은 스마트폰 조립 공장 사업비 규모와 미국 현지 자잿값·인건비 등을 고려해도 20억달러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제조업계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삼성전자가 관세 부담을 떠안는 것보다 미국 현지에 내수용 스마트폰 공장을 짓는 게 낫다”며 “자동화 설비 수준, 땅값, 주정부의 지원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불확실성 제거 측면에서 대응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인건비가 비싸지만, 현지에 공장을 지으면 유통 비용이 대폭 줄어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자업계 관계자도 “가전·반도체 등에 비해 스마트폰은 생산 설비가 작아 설립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든다”라고 말했다.
◇ 미국으로 공장 이전 비용 측면 이점 없어
다만 실제 생산라인을 미국에 구축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스마트폰) 전체 공급망 중 10%만 미국으로 이전하더라도 약 300억달러와 3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을 제조하려면 배터리·메모리·프로세서 등 각종 부품이 필요한데, 이것들이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미국으로 들여올 때 관세가 붙는다. 결국 ‘제조 생태계’를 꾸리지 않으면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폰을 미국에서 조립하더라도 부품 상당수가 중국에서 생산돼 결국 생산 비용이 9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닐 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부사장도 “(미국으로의 스마트폰 생산기지 이전은) 막대한 보조금과 저렴하고 숙련된 노동력 없이는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서 제조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전혀 이점이 없다”고 했다.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결국 소비자 판매가 인상으로 트럼프발 관세에 따른 손실을 충당할 것”이라며 “경쟁사인 애플 역시 가격 인상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어, 삼성전자가 실제로 스마트폰값을 올려도 미국 내에선 큰 점유율 하락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 스마트폰 관세 인상에 대응해 글로벌 생산기지 재편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한국·베트남 외에도 브라질·인도 등 전 세계 8곳에 스마트폰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단계에서 미국 관세 대응과 관련한 별도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