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년 만에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 복귀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인공지능(AI) 고도화와 해외 사업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두 가지 경영 키워드가 맞물리는 시장인 미국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이 의장의 경영 전략은 ‘용병술’에도 나타난다. 재무·투자에 밝은 경영진을 최근 미국에 전진 배치하면서 추가적인 인수합병(M&A)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이 의장 복귀 후 네이버의 조직개편과 행보가 ‘AI·해외’에 맞춰져 있다”면서 “자신의 비전을 실행할 방법으로 과감한 투자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북미 투자 위해 ‘전략투자 부문’ 신설… CFO 출신 김남선 대표 낙점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 의장은 올해 3월 네이버의 키를 다시 잡자마자 북미 지역 투자에 집중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전략투자 부문’을 신설했다. 지난달 꾸려진 조직을 이끌 적임자로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김남선 대표가 낙점됐다. 김 대표는 네이버에서 ‘M&A통’으로 불린다. 그는 서울대 재료공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현지 로펌에서 약 2년간 변호사로 근무했다. 이후 투자 회사인 라자드와 모건스탠리, 맥쿼리에서 일했다. 네이버에는 2020년 8월 합류했다.
이 의장은 다음 달 5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네트워킹 행사를 열고 100여명의 현지 벤처캐피탈(VC)·스타트업 창업자 등과 만난다. 김 대표도 일정을 함께 소화하며 이 의장과 현지 유력 AI 기업인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장은 실리콘밸리 출장을 계기로 유망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는 현지 신설 법인 ‘네이버벤처스’(가칭) 출범도 논의한다. 신설 법인을 이끌 후보로 김 대표가 거론되고 있다.
네이버의 미국 시장 진출은 이 의장의 오랜 꿈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한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만나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도 이 같은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네이버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D2SF는 작년 10월 북미에 거점을 마련하고 국내 테크 스타트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 2년 전 인수한 포시마크도 북미 중심 재편
이 의장은 북미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포시마크’의 성장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에 김 대표가 지난 3월 네이버 CFO에서 포시마크 이사회 집행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이버는 지난 2023년 1월 1조6610억원 규모의 ‘빅딜’이었던 포시마크 지분 100% 인수에 성공했는데, 당시 김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포시마크 인수는 미국 현지 특수목적 법인(Proton Parent, Inc.)을 통해 이뤄졌는데, 김 대표가 이 법인의 대표였다. 네이버 창사 이래 최대 규모 M&A였던 만큼 이 의장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시마크는 네이버가 인수할 당시 연간 10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네이버는 포시마크의 월간활성이용자수(1840만명)와 연간 활성 구매자수(800만명) 등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전체 사용자 중 MZ세대 비중이 80%이며, 미국 밀레니엄 세대 여성의 약 90%가 포시마크 커뮤니티에 가입한 점도 매력적이었다.
김 대표는 현재 포시마크의 경영효율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 포시마크 호주법인(Poshmark Pty Ltd.) 청산 작업을 마무리했으며, 인도·영국 법인 정리 작업에도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를 내고 있는 북미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는 취지다. 네이버가 인수하기 전 적자를 내던 포시마크는 작년 1·2·4분기에 흑자를 기록하며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네이버 사정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는 “이 의장이 복귀 후 M&A 전문가를 중용해 미국에 전진 배치하는 건 의미가 있다”면서 “네이버와 사업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AI 스타트업 발굴부터 포시마크 인수와 같은 빅딜까지 다양한 방안이 폭넓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