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쥔 샤오미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7일 웨이보에 공유한 사진. "반도체를 만드는 일은 거의 죽을 만큼 어렵다는데, 왜 샤오미는 그래도 하려는 걸까요?"라고 적힌 화면 앞에서 레이쥔 CEO가 2017년 첫 자체 개발 칩을 발표하는 모습./레이쥔 CEO 웨이보

“이제 기기에 들어가는 두뇌 칩도 우리가 직접 만듭니다.”

중국 샤오미가 이달 말 자체 개발한 모바일 칩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샤오미의 칩셋이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며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전자제품·전기차를 제패한 샤오미가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며, 전통 강자 퀄컴과 미디어텍이 지켜온 안드로이드 칩 시장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겠다는 각오입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샤오미가 개발한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쉬안제O1’(XringO1)은 성능 측정 전문 플랫폼 긱벤치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주로 탑재되는 퀄컴 스냅드래곤8 Gen3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샤오미 칩셋은 하나의 코어(작업 단위)로 얼마나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싱글코어 점수 2709점, 여러 개의 코어가 동시에 작업할 때의 전체적인 성능을 나타내는 멀티코어 점수 8125점을 기록했습니다.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 수준에 준하는 성적표입니다.

현존 모바일 SoC 중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퀄컴 스냅드래곤8 Gen4(싱글코어 3215점, 멀티코어 1만51점)나 미디어텍 디멘시티 9400(싱글코어 2904점, 멀티코어 8812점)과 비교해도 샤오미 쉬안제O1이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자체 설계 칩으로 성공적인 복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모바일 칩은 성능이 전부가 아닙니다. 전력 소비와 발열을 최소화하면서도 크기를 작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설계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애플, 퀄컴, 미디어텍, 삼성전자 같은 기술집약적 기업들이 주도해 왔습니다. 앞서 샤오미도 도전했었습니다. 샤오미는 2017년 자체 설계한 모바일 칩을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했습니다. 하지만 기술력 부족 등의 문제로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퀄컴 등으로부터 칩을 공급받아 써왔습니다.

샤오미가 오는 22일 발표 예정인 자체 개발 모바일 시스템 온 칩(SoC)인 ‘쉬안제O1’(XringO1)./레이쥔 CEO 웨이보

그랬던 샤오미가 5년 만에 환골탈태한 칩을 들고 다시 나타난 겁니다. 샤오미가 Arm 기반 구조를 기반으로 자체 설계한 칩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에서 최신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을 통해 생산됩니다. 이는 애플 최신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과 유사한 수준의 첨단 공정입니다. 아직 미국이 TSMC에 중국 기업용 모바일 칩에 대해서는 제재를 따로 하고 있지 않아 가능한 일입니다. 벌써부터 업계 일각에선 샤오미가 앞으로 퀄컴과 미디어텍으로부터 플래그십 칩을 조달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샤오미는 애플처럼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수직계열화된 스마트폰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샤오미는 이미 자체 운영체제인 ‘하이퍼OS’가 있어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 오는 22일 칩 발표를 예고하며 “샤오미의 칩 도전은 2014년에 시작됐는데, 10년간 얼음물을 마셔도 피는 식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5년 전 글로벌 차세대 하드코어 기술의 선도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개발(R&D)에 1000억위안(약 19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지금까지 1050억위안(약 20조3000억원)을 투입했고, 올해는 300억위안(약 5조8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막대한 투자금을 등에 업고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독립 속도는 빨라지고 있습니다. 중국 화웨이는 모바일용 칩과 인공지능(AI) 서버용 ‘어센드’ 칩에 이어, 이번에는 PC 두뇌 역할을 하는 ‘기린 X90′ 칩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린 X90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 7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칩은 화웨이의 자체 운영체제 ‘하모니OS’ 기반 차세대 노트북과 폴더블 PC에 탑재될 예정으로, 미국의 제재에 굴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PC 칩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PC 기업 레노버도 5나노 자체 개발 칩을 탑재한 노트북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독립 굴기는 이제 단순한 도전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존 반도체 강자들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든 두뇌’를 글로벌 무대에 올리려는 시도가 하나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지금, 한국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