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D램 가격이 최근 상승세를 보이는 데다 중동발 인공지능(AI) 붐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증가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세 전쟁에 대비해 D램 재고를 축적하려는 글로벌 고객사의 주문이 잇따르고 있고, 엔비디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AI 반도체 거래가 성사되면서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수혜가 예상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삼성전자는 구형 DDR4 D램과 DDR5 D램 가격을 두 자릿수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역시 소비자용 D램 가격을 약 12%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마이크론이 지난달 고객사에 가격 인상 방침의 서한을 보낸 이후 시장 전반에 가격 인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부터 D램 고정거래가격(ASP)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4월 평균고정거래가격은 1.65달러로 전월보다 22.22% 급등했다. 5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트럼프발 관세 발효를 앞두고 주요 고객사들이 D램 재고를 비축하고 있어 수요 급증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미국 주요 고객사들은 관세 영향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재고를 확보해 두자’는 분위기다. 중국의 내수 소비 진작을 위한 ‘이구환신’ 보조금 정책으로 중국 PC·모바일 업체들의 수요가 개선된 점도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구형 D램은 장기간 침체를 겪은 탓에 신형 DDR5 제품보다 인상률이 가파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0일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글로벌 관세 우려로 세트(완제품)의 프리빌드(사전 재고 비축)가 확대돼 고객사 부품 재고가 당초 예상 대비 빠르게 소진됐다”고 말했다. 범용 메모리 가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올 2분기 실적 반등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에도 고부가 메모리 제품군 역시 상승세가 전망된다. 범용 D램 가격뿐만 아니라 HBM 가격도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엔비디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두 번째 AI 메모리 붐이 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지난 13일(현지시각) 엔비디아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설립한 AI 스타트업 휴메인과 500메가와트(M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5년간 자사 최신칩 ‘블랙웰 울트라’를 탑재한 GB300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1만8000개를 공급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블랙웰 울트라에 탑재할 SK하이닉스의 HBM3E(5세대 HBM) 12단 가격을 기존 HBM3E 8단 대비 60% 이상 높게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블랙웰 울트라 출시 시기를 올 상반기로 앞당기면서, 물량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높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도 엔비디아에 HBM3E 8단과 12단을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올 2분기에 최대 실적 경신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SK하이닉스의 HBM 총 출하량은 137억기가비트(Gb) 수준으로, 엔비디아 비중이 70%를 웃돌 것”이라며 “내년까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독주 체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