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가입자 송모(39)씨는 5월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SK텔레콤 대리점에서 재고 부족으로 유심(USIM·가입자식별장치)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해외에서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유심 교체의 대안인 ‘유심 보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심 보호 서비스는 유심이 원래 주인의 휴대폰이 아닌 다른 단말기에 꽃힐 경우 통신망에 연결되지 않도록 해준다.#
#이달 초 베트남 여행을 계획 중인 SK텔레콤 가입자 안모(48)씨도 출국 전까지 유심을 교체하지 못하면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씨는 “거래처에서 중요한 계약 협상이 진행 중이라 외국에 있어도 연락을 받아야 하는데, 유심 보호 서비스를 이용하면 로밍 서비스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통신사가 잘못해 보안이 뚫렸는데 가입자의 ‘통신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해킹 공격을 인지한 SK텔레콤이 가입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유심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해외 로밍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어 5월 황금연휴를 맞아 해외 여행을 계획 중인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는 SK텔레콤이 해외 로밍 사용 제한에 대한 사전 고지를 했기 때문에 법적인 배상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 공항서도 ‘유심 대란’ 오픈런 우려
1일 SK텔레콤에 따르면 이 회사 가입자들이 해외에서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유심 보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다. 다만, SK텔레콤은 이달 중 해외 로밍 중에도 유심 보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장 해외로 떠나는 SK텔레콤 가입자들은 유심 보호 서비스를 포기해야 로밍 서비스가 가능한 상황이다. 해외 로밍 중 유심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건 해외에서 유심 기기를 변경하면 해외 통신망을 거치기 때문에 SK텔레콤 전산에서 확인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해외로 떠나는 SK텔레콤 가입자들은 유심 교체 외에는 해킹 피해 방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유심을 최대한 많이 공항으로 보내 출국자를 대상으로 교체해 줄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SK텔레콤 가입자(알뜰폰 포함)는 약 2500만명인데, 현재 재고는 100만개 수준에 불과하다. SK텔레콤이 이달 말까지 유심 500만개를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5월 1일부터 출국자들이 붐빌텐데 유심 교체를 희망하는 SK텔레콤 가입자들이 공항에서도 오픈런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 SKT, 해외서 ‘유심 보호 서비스’ 사용 불가 사전 고지
법조계 안팎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통신의 자유 침해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통신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개인이 해외에서 자유롭게 통신할 권리를 포함한다. 만약 SK텔레콤의 조치가 가입자의 통신의 자유를 불합리하게 제한한다면, 이는 기본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이 해외 로밍 사용 제한에 대해 사전 고지를 하는 등 법적 흠결이 없어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김기윤법률사무소의 김기윤 변호사는 “SK텔레콤이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을 안내하면서 해외에서 로밍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을 고지했는지 여부가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라면서 “회사 측이 사전 고지를 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로펌 출신 한 변호사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 통신 서비스를 조정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통신사 약관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계약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면서 “해외에서 통신이 제한된다는 점을 사전 고지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편, SK텔레콤의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자 수는 지난달 30일 기준 1167만명으로 집계됐다. SK텔레콤이 해킹 사고 피해를 발표한 지 8일 만에 전체 가입자(2300만명)의 50% 이상이 서비스에 가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