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TSMC의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공정뿐만 아니라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및 제조 과정에 앤시스의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솔루션이 도입됐습니다. 설계 검증부터 양산 수율, 칩 성능까지 개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고객사와 함께 인공지능(AI) 시대를 열어 가겠습니다.”
박주일(52) 앤시스코리아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 앤시스코리아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HP와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뒤 지난 2012년 앤시스코리아에 합류했으며, 지난해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앤시스는 1970년 설립돼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분야 선두 기업이다. 개발 단계 제품이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측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제공한다. 자동차와 항공우주,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의 제품 설계 및 제조 공정 최적화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앤시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25억4480만달러(약 3조6479억원)다.
앤시스는 반도체 개발 및 양산 과정을 효율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세계 1위 EDA 기업인 시높시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350억달러(약 47조원)를 들여 앤시스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앤시스는 반도체 공정 설계부터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력 및 신호 전달 오류의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전력 무결성 사인오프’ 솔루션 분야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앤시스는 지난 1970년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첫 고객사를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솔루션 분야에 주력해 왔다”며 “꾸준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시장 선두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EDA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은 반도체를 설계·검증할 때 필수로 사용된다. 건축 설계도를 그릴 때 컴퓨터 지원 설계(CAD)를 쓰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반도체는 개별 공정의 하자가 양산 수율과 칩 성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사전에 오차가 없어야 해 이를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앤시스는 EDA 분야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 한국 고객사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메모리로 부상하고 있는 HBM 개발 및 양산 공정에도 앤시스의 EDA가 투입된다. HBM의 설계 검증뿐만 아니라 칩의 발열을 통제할 수 있도록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HBM의 적층 단수가 높아지면서 여기에 탑재되는 D램에서 발열 등 전력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맞춤형 HBM 시대로 접어들면서 HBM의 두뇌를 담당하는 로직 다이를 함께 설계하는 엔비디아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와의 협업이 중요해져 앤시스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가 원활히 공유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의 첨단 공정에도 앤시스의 EDA 툴이 활용된다. 박 대표는 “3㎚ 이하 공정에 GAA 등 신규 공정이 도입되면서 공정 난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며 “공정 비용도 치솟아 사전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앤시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TSMC, 삼성전자 모두 앤시스의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고, 삼성전자와는 현재 1.4㎚ 공정 설계 과정부터 협업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앤시스의 주력 솔루션에 대해 소개해 달라.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반도체 산업의 큰 변화가 생겼다.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 첨단화로 전력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됐다. 3㎚ 이하 파운드리 공정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후면전력공급(BSPDN) 등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다. 신규 공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공정 난도가 높아지면서 전력 문제가 심화된 것이다.
공정 난도가 올라간 만큼 새로운 장비와 소재 등이 활용되니 공정 비용도 올랐다. 사전에 전력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툴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앤시스는 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분석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고객사인데, 어떻게 협업하고 있는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HBM 개발 및 제조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솔루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적층 단수가 높아질수록 칩의 두께가 얇아져야 하고, 칩 간 거리가 좁아지면서 전력 누설에 따른 발열 등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차세대 HBM은 고객사 요구에 맞춰 로직 다이가 설계되는 맞춤형 형태로 생산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로직 다이 설계에 참여하는 고객사와 이를 제조하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 간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하다. 엔비디아 등 HBM 고객사가 모두 앤시스의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는 만큼 서로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원활히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도 앤시스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는데.
“최근 삼성전자와 TSMC 등 2㎚ 공정 경쟁이 본격화됐다. 공정이 미세화되면 난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전자와는 1.4㎚ 공정 설계부터 협업을 진행 중이다.
실리콘 포토닉스에 대한 협업도 확대하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기본 반도체 신호 전달 방식을 전기에서 전자·빛으로 구현한 기술이다. 이를 공정에 적용할 경우 신호 전달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전력 효율도 크게 늘어난다. 앤시스는 전력 분야뿐만 아니라 광학 솔루션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실리콘 포토닉스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엔비디아 등도 소프트웨어 플랫폼 활용도가 높은데.
“엔비디아가 개발 과정에서 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는 데 적극적이다. 칩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칩 자체를 디지털 트윈화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까지 디지털 트윈을 통해 가상 환경을 제작한다. 이를 통해 칩이 기존 목표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데이터센터에서 구동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사전에 검증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자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앤시스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는 데이터가 엔비디아가 보유하고 있는 AI 솔루션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