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케이블TV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이 본업인 유료방송 시장의 침체를 인터넷·통신 등의 사업으로 버티면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11일 유료방송 업계에 따르면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전체 매출 중 부가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가입자가 ‘볼거리 대체재’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터넷(IP)TV 등으로 이동하는 ‘코드 커팅’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방송 부문 매출이 빠르게 쪼그라드는 추세다. 반면 인터넷서비스제공(ISP) 사업과 알뜰폰(MVNO) 등 통신 부문의 매출은 유지하거나, 하락하더라도 방송 사업보다 그 규모가 작았다.

다만 인터넷·통신 등 부가 사업 부문의 매출 규모가 방송 대비 크지 않고, 시장에 진출한 사업자도 이미 포화 상태라 성장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케이블TV 사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주요 기업들은 작년부터 구조조정을 실시, 비용 통제에 돌입했다.

◇ 케이블TV 시장 위축에 영업이익 ‘급감’

MSO 5개 기업 중 딜라이브를 제외한 네 곳(SK브로드밴드·LG헬로비전·CMB·KT HCN)이 작년 사업·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SK브로드밴드를 제외한 3개 기업 모두 연결기준 연간 실적이 전년 대비 뒷걸음질했다.

LG헬로비전은 작년에 매출 1조1964억원, 영업이익 13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0.5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71.5% 감소했다. KT HCN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3.86% 감소한 2295억원, 영업이익은 54.28% 줄어든 101억원으로 집계됐다. CMB 역시 매출(1338억원)은 2.10% 빠졌고, 영업이익(65억원)은 10.04% 하락했다. 2년 전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62.78% 감소한 수치다. CMB는 다른 기업보다 전체 매출에서 방송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ISP·IPTV 사업을 영위하던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020년 4월 MSO인 티브로드를 품으면서 케이블TV 시장에 진출했다. 이 기업은 국내 MSO 중 유일하게 작년 실적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 매출은 3.1% 성장한 4조4089억원, 영업이익은 12.35% 오른 3524억원을 기록했다.

IPTV 부문의 성장으로 실적 방어에 성공했지만, 케이블TV 매출은 부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SK브로드밴드는 케이블TV와 IPTV 사업 부문을 묶어 ‘미디어 사업’으로 분류해 작년 세부 실적은 확인이 어렵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는 2023년 케이블TV 사업에서 매출 3060억원과 영업손실 282억원을 기록했다. 티브로드 시절 흑자를 보던 사업이 적자로 전환된 것이다. 이 기업이 이 부문에서 연간 손실을 기록한 건 방통위가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을 공표하기 시작한 2007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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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T 성장할수록 유료방송 가입자 이탈 가속

국내 케이블TV 사업이 이렇게 위축된 배경으론 OTT 시장의 성장이 꼽힌다.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지난 2023년 하반기 3631만106명으로 2022년 상반기보다 3만7389명 줄었다. 유료방송 가입자 수가 감소를 나타낸 건 2015년 조사 이래 처음이다. 작년 상반기엔 이보다 5328명이 더 빠졌다.

반면 OTT 유료 이용자 수는 2021년 12월 3000만명에서 작년 4월 3175만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OTT 이용률도 2022년 72.0%에서 작년 79.2%로 7.2%포인트(P) 높아졌고, 유료 이용자 비율도 이 기간 4%P 오른 59.9%로 집계했다. 방통위는 10대부터 30대까지 OTT 이용률이 90%를 지속적으로 상회하고, 40대 이상의 이용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OTT 시장 성장은 코드 커팅 현상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를 잃고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케이블TV 사업자들이 곁다리로 진출한 시장에 의존해 지금의 한파를 견디고 있다”며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 사업 대비 하락이 더딘 인터넷·통신 부문이 아니었다면 더 일찍 무너진 기업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MSO의 매출 구성을 보면 부가 사업 영역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작년에 인터넷·전화 등의 사업을 담당하는 유선통신 부문에서 매출 2조4885억원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56.4%)이 여기서 나왔다. 비중은 전년 대비 1%P 높아졌다.

◇ 시장 더 위축하기 전에… 신사업 발굴 ‘골몰’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응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팔을 걷어붙였다.

SK브로드밴드·LG헬로비전·KT HCN은 모기업과의 시너지 창출에 골몰하면서 자체 신사업 마련을 추진 중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인공지능(AI) 수익화를 위해 추진 중인 ‘인프라 슈퍼 하이웨이’ 전략의 한 축인 AI 데이터센터(AIDC)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한국전력기술 양자내성암호(PQC) 전용회선 구축 사업을 수주하는 등 기업간거래(B2B) 사업 개척에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KT HCN도 KT스카이라이프에 지난 2021년 10월 인수된 후 KT그룹 내 미디어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LG헬로비전이 주목한 건 렌탈·교육 시장이다. 대형 가전에서 펫 전용 가전 렌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교육청과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보급하는 1754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CMB는 2023년 케이블TV에 미디어·커머스·지역정보 등을 더한 ‘레인보우TV’를 기반으로 신규 먹거리 마련에 나섰다. 케이블TV와 OTT 장점을 결합해 가입자를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작년엔 삼성·LG TV에 기본 탑재되는 ‘레인보우TV 앱TV’를 출시하기도 했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케이블TV 사업자가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도 “유의미한 실적 변화가 나타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