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주요 미디어 기업들이 정부에 인공지능(AI)으로부터 콘텐츠를 보호할 것으로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오픈AI와 구글이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에 공개 데이터의 공정 사용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미디어 기업들이 네이버를 상대로 콘텐츠 무단 학습에 제동을 걸면서 법적 공방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10일 IT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을 포함한 미국 내 수백 개 미디어 기업들이 이번 주부터 ‘책임 있는 AI를 지지한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뉴스 및 미디어 연합이 진행하며 인쇄 및 온라인 매체에 광고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광고에는 “AI를 감시하라” “AI 절도를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포함돼 있으며 하단에는 “절도는 반미적이다. 워싱턴은 빅테크 기업이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다니엘 코피 뉴스 및 미디어 연합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빅테크 기업과 AI 기업들은 언론사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해 AI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콘텐츠 제작자들의 광고 및 구독 수익을 빼앗고 있다”며 “뉴스 미디어 업계는 AI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AI가 책임감 있게 구축된 균형 잡힌 생태계를 추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캠페인은 최근 오픈AI와 구글이 정부에 자사 AI 모델이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학습할 수 있게 허용해 달라고 서한을 보낸 데 따른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미국 AI 리더십에 대한 장벽 제거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AI 정책에 대한 공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이에 AI 기업들은 AI가 훈련을 위해 공개적인 정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최근 이들 기업이 다수의 저작권 소송에 휘말린 상황에서 AI 훈련 방식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AI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뉴욕연방법원은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오픈AI의 기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픈AI는 뉴욕타임스가 2020년부터 AI 학습에 기사를 사용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뉴욕타임스의 저작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향후 AI 기업들이 AI 학습에 콘텐츠를 활용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AI 저작권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도 지난 2월 대부분 미디어 회사들이 AI 기업에 반기를 드는 캠페인을 벌였다. ‘공정하게 만들어라’라는 이름을 내건 이 캠페인은, AI 기업이 허가 없이 콘텐츠를 무단으로 수집해 관련 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영국 미디어 업계는 정부와의 협의 마지막 날인 지난 2월 25일 지역 및 전국 일간지 뉴스 표지와 홈페이지에 캠페인 문구를 올렸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전국 53개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신문협회는 생성형 AI 학습에 기사를 무단으로 활용한 네이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아울러 신문협회는 오픈AI, 구글 등 해외 생성형 AI 기업도 언론사 기사를 무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이들 기업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공정위 제소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신문협회에 앞서 지상파 방송 3사 중심의 한국방송협회도 지난 1월 방송사 기사를 인공지능 학습에 무단으로 활용했다며 네이버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한 상태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현재 글로벌 AI 기업들은 저작권 침해 논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사전에 협의하기보다는 사후 소송이 걸리면 협의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미디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