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에 낮아진 눈높이에 비해 기대 이상의 실적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영업이익이 5조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6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뒀으며, 2분기부터 D램, 낸드플래시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며 실적 반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올해 2분기부터 본격화될 관세 영향과 불확실성의 증가로 향후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8일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1분기 잠정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0.15% 감소한 규모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79조원으로 전년보다 9.84% 늘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당초 시장 기대치를 상회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은 77조2208억원, 영업이익은 5조114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적 발표를 앞두고 증권사들은 일제히 삼성전자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는 추세였다.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국내 15곳의 증권사의 컨센서스를 종합하면 1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 바 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5% 수준 감소한 수치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는 “트럼프발 관세 우려로 2분기에 발생할 매출이 1분기로 당겨지면서 기존 전망치를 소폭 상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영업이익 6000억원 수준…전년比 60% 곤두박질
국내 증권사들의 사업부별 영업이익 추정치를 종합해 보면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은 6000억~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9100억원)과 비교하면 6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메모리 반도체 출하량 부진과 맞물려 가격 하락세가 심화된 가운데, HBM 및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부진하며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세에 접어든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올해 1분기에도 반등하지 못하면서 발목을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D램 가격은 작년 8월과 9월 각각 2.38%, 17.07% 내려앉은 뒤 11월 20.59% 급락했다. 낸드 가격은 작년 1월 4.72 달러에서 작년 12월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각각 5%, 11% 하락했고, 가격은 9%, 15%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김형태 신한증권 수석연구원은 “메모리 출하량과 평균판매가격(ASP)이 예상대로 부진했다”며 “HBM 주문 공백과 저조한 파운드리 가동률이 겹치면서 이 같은 실적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사업부와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DA사업부도 각각 3조5000억원대, 4000억~5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MX사업부는 갤럭시S25 시리즈 등 신제품 출시 효과와 우호적인 환율에 힘입어 수익성을 방어했다. 다만, 가전 사업은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돼 실적 기대치를 하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연구원은 “MX사업부는 환율 및 신제품 출시 효과로 전년 대비 외형이 성장했다”며 “수익성도 원가 절감에 따라 우려 대비 양호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과 함께 하반기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이구환신 정책으로 범용 D램과 낸드 채널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가운데,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과 PC, AI 서버 확대로 인해 견조한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 2분기부터 가격이 상승 전환할 것으로 예상치를 상향했고, 하반기의 상승폭 역시 기존 전망치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하며 “메모리 부문의 영업이익은 25.2조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할 전망이다”고 설명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재고가 정상화되면서 범용 D램과 낸드 가격이 모두 2분기부터 인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메모리사업부에 대한 우려도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트럼프 “반도체도 관세 임박”… 모바일·메모리 수익성 악화 우려
올해 2분기가 한 해 실적 농사의 ‘본게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트럼프가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모바일, 가전 사업뿐만 아니라 반등세에 접어든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국가에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60여개국에 대해선 국가별 차등을 둔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관세 정책에서 반도체는 제외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향하는 전용기 내에서 취재진과 만나 “반도체 관세는 곧 시작될 것(very soon)”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삼성전자 실적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스마트폰이 문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5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베트남에 46%의 상호관세가 부과되면서 MX사업부의 관세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대미 스마트폰 수출분 전체가 베트남에서 생산된다고 가정할 경우, 지난해 기준 MX사업부 영업이익률이 9%에서 3%로 6%포인트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트럼프가 메모리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서버용 DDR5와 eSSD 등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고객사가 대거 미국에 포진된 영향이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센 가운데,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첨단 반도체 수익성마저 저하된다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섣불리 메모리 반도체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HBM 등 AI 가속기와 AI 서버에 탑재되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으로 제한돼 있고 대부분의 고객사가 자국의 글로벌 빅테크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 연구원은 “현재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뿐이다. 관세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가격을 인상하게 되면 관세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전가된다”며 “결국 자국 기업이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도 섣불리 메모리 반도체에 관세를 매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