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고성능 반도체 기판인 플립칩(FC)-볼그리드어레이(BGA)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정하고 선행 기술 개발과 생산성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의 고성능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클라우드 확대로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 기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삼성전기의 FC-BGA 매출이 지난해 5700억원에서 3년 내 1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일 삼성전기에 따르면 장 사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반도체 패키지 기판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장 사장은 지난 16일 제49기 주주총회에서 “기판 위 모든 시스템을 통합하는 패키징 기술이 앞으로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라며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시스템 온 서브스트레이트(SoS·System on Substrate) 시대를 열겠다”라고 했다. SoS는 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구현하는 시스템온칩(SoC·System on Chip)을 변형시킨 용어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전자부품을 전기적으로 연결하고 기계적으로 지지하는 회로 연결용 부품이다. TV,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 스마트폰, 자동차, 비행기, 선박 등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사용된다.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전기 신호가 많은 고성능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메인보드와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기판이다.
FC-BGA의 경우 인텔, AMD, 엔비디아 등이 만드는 고성능 칩에 주로 활용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기자동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도 FC-BGA를 사용하면서 FC-BGA의 공급 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FC-BGA를 ‘제2의 반도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FC-BGA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기술 진입 장벽은 높다. 고성능 칩에 사용하는 만큼 높은 안정성과 빠른 전송 속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이비덴과 신코덴키, 대만 유니마이크론, 삼성전기 등이 FC-BGA를 양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LG이노텍이 FC-BGA 사업에 뛰어들었다. 업계는 CPU와 GPU의 코어 증가로 패키지 기판의 크기가 커지면서 FC-BGA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 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다.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사업부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개발을 담당했다.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SoC 개발을 총괄하면서 반도체 관련 부품 플랫폼 사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SoC 개발 경험을 그대로 반도체 패키지 기판 사업으로 옮겨온 것이다.
삼성전기는 지난 2018년까지 반도체 패키지 기판 사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했다. 지난 2018년 영업손실은 559억원으로 전년 421억원 대비 적자 폭이 1년 새 33% 늘어나기도 했다. 삼성전기는 그동안 스마트폰 메인기판인 HDI(High Density Interconnection)를 주력으로 했다. 그런데 2015년부터 중국과 대만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계속되면서 매년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에 삼성전기는 2017년부터 FC-BGA로 눈을 돌렸고, 2019년부터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업계는 지난해 삼성전기 패키지솔루션 부문 매출(1조6792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700억원이 FC-BGA에서 나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동시에 올해 7000억원을 넘어 3년 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FC-BGA 시장이 매년 20% 가까운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업체 프리스마크는 지난해 전체 패키지 기판 매출이 122억달러(약 14조7986억원)를 기록한 가운데, FC-BGA가 47%에 해당하는 57억달러(약 6조9553)를 거둔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면서 FC-BGA 공급 부족 현상이 당분간 계속되면서 오는 2026년까지 연평균 1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기는 FC-BGA 사업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베트남 타이응우옌성 공장에 FC-BGA 설비와 인프라 구축을 위해 9억2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달 28일에는 이 공장에 추가로 3200억원을 투자, FC-BGA 생산 확대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3개월 새 FC-BGA 생산에만 1조4000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장 사장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든 만큼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그는 주총에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 (스마트폰 등 개인화된 기기를 넘어) 서버, 네트워크, 하이엔드 PC 중심으로 많은 고객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FC-BGA 생산량을 추가로 늘려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장 사장은 “고객사와 긴밀히 협의해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라며 “지속적인 생산량 증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다”라고 했다.
증권업계는 올해 삼성전기가 FC-BGA 사업에 힘입어 역대 최고 실적인 매출 10조3965억원, 영업이익 1조697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년 대비 매출 7.5%, 영업이익 14.1% 늘어난 규모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의 FC-BGA 매출이 올해 7000억원, 2023년 8400억원을 거쳐 2024년 1조1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FC-BGA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기술적 최상단에 위치해 공급 부족이 가장 심한 제품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2026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