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산모 사망률, 16세 이하 여성 출산율 50% 이상, 난민 급증에 따른 행정 마비, 끝없는 기근. 아프리카 중서부 국가 차드가 처한 현실이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차드는 인구 1800만명 규모의 석유 수출국이나 내전과 쿠데타, 종교 세력 간 분쟁이 이어지면서 아프리카 최빈국을 면치 못하게 됐다. 면적은 한반도의 6배 이상이나 대부분이 기후변화 최전선인 사헬(Sahel) 지대에 위치해 가뭄과 폭우, 홍수에 취약하다.
이달 서울 중구에서 만난 예완데 오사리에메 오디아 유엔인구기금(UNFPA) 차드사무소 소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는 표적은 어린 여성들”이라며 국제 사회의 도움을 촉구했다. 빈곤과 교육 중단, 조혼, 무분별한 출산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사회 인프라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이 오디아 소장의 지적. 그는 “상당수의 차드 여성들이 12세 전후로 결혼을 하게 되면서 삶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며 “여성 선택권 보장이 국가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오디아 소장과의 일문일답.
─UNFPA가 어떤 조직인지 궁금하다. 차드사무소의 주요 역할은.
“UNFPA는 출산과 성·재생산 건강, 성평등, 젠더 기반 폭력 예방 및 대응, 인구 데이터 구축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유엔(UN) 산하기구다. 차드에서는 특히 산모 사망률과 조혼, 여성의 교육 접근성 문제에 초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불행히도 차드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삶을 설계하기 어려운 구조다. 사실상 여성의 선택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은 소장으로서 UNFPA가 표방하는 목표를 차드 현지 상황에 맞게 구현하고 있다. 국제적 기준과 차드 정부의 국가개발계획 사이에서 현실적인 교차점을 찾아 실질적 변화로 이끄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출산 지원을 위한 산파(産婆) 제도 ▲취약 지역 이동식 클리닉 ▲여성 자립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차드는 산모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들었다.
“사실이다. 2020년 초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차드에서 출산 중 사망하는 비율은 전체 사망 중 약 6%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현지에서 통계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최근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것 역시 문제다. 차드에선 화전 농업이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농민들은 수시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다. 어느 지역에서 출산하는지, 얼마나 사망하는지, 어떤 시설이 부족한지에 대한 집계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근 국가인 수단,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지에서 난민들이 유입되며 인구가 두세 배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한참 부족한 보건 인프라 하에서 산모 건강 지원, 여성 성폭력 대응, 심리 상담, 법률 지원이 모두 함께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NGO 등 외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어 자금이 끊기면 바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한국도 차드 지원 사업에 손을 보태고 있다고.
“차드 남부와 호수 지역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2021년부터 3년간 ‘여성 역량 강화 및 커뮤니티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이 프로그램은 소득 창출 활동, 시드 펀딩, 기술 훈련 등을 통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24년 12월 31일 종료를 앞두고 있으나 현지 여성들로부터 자녀 교육과 생계 유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7월부터는 대한민국 외교부 측 지원으로 새로운 사업도 시작됐다. 수단 국경 인근 난민캠프 및 국내실향민 지역을 중심으로 10명의 산파와 7명의 성폭력 피해자 심리사회지원 인력을 배치,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가 국제 원조 예산을 삭감하면서 여파가 클 것이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재정 삭감의 여파는 이미 현장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UNFPA가 미국 예산에 의존하던 차드 동부와 남부, 호수 지역 프로그램이 직격타를 입게 됐다. 300명 규모 산파 중 100명분의 급여가 끊길 상황에 처했고, 현재는 임시방편으로 다른 자금에 의존해 가까스로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빈곤국이 언제까지나 해외 원조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차드 정부가 외부 지원 없이 자립적으로 국가를 운영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자립은 불가능하다. 일정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는 단계에 오려면 국제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일각에선 해외 원조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된다. 한국은 왜 차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보나.
“세계 경제가 혼란스럽고 불확실성이 가중된 상황에서 해외 원조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인류 공동체는 서로 간 협력이 불가피하다. 한국 또한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성장한 역사가 있다. 이러한 이력을 살려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해외 원조는 국제 사회에 한국의 입지를 굳히는 ‘소프트 파워’ 형성에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전세계가 케이팝(K-pop)과 케이드라마(K-Drama)에 열광하면서 한국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급속 성장하지 않았나. 문화와 교육, 협력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한국 또한 외교적 성과를 일궈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