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국제 유학생 비자 심사에 ‘소셜미디어(SNS) 이력’을 본격적으로 반영하자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SNS 활동 기록을 스스로 삭제하거나 검열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학생들은 정치 성향을 의심받을 만한 게시물과 더불어 과거 ‘좋아요’를 누른 게시글이나 팔로우 이력까지 지우면서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9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최근 해외 주재 영사관에 새로운 내부 지침을 전달, 학문·직업훈련·문화교류 목적의 비자를 신청하는 외국 국적자들의 SNS 계정을 ‘공개된 상태’로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특히 미국의 건국 이념이나 정부, 문화, 국민에 대한 ‘적대적 표현’이 발견될 경우 비자 발급 심사에 반영하라는 지침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SNS 활동을 점검하고 있다. 한 중동 출신 대학원 지원자는 “팔레스타인 국기 이모지를 단 계정과는 연결을 모두 끊었으며 수박 이모티콘(팔레스타인 지지 상징)도 프로필에서 삭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원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카멀라 해리스, 조 바이든, 버락 오바마 등 진보 성향 정치인 계정은 모두 언팔로우했다”며 “과거에 누른 정치 관련 ‘좋아요’도 하나하나 지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삭제 대상은 정치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있다. 테러, 무장 충돌, 이민 문제와 관련해 민감한 언급이 담긴 게시물은 물론 자선 활동이나 인권운동에 대한 게시물도 검열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남아시아 국적 유학생은 “아프가니스탄 고아원 후원을 알리는 릴스 영상에 무심코 ‘좋아요’를 눌렀다가 바로 취소했다”며 “미국 당국이 이를 ‘극단주의 종파와의 연루 가능성’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미 국무부는 SNS 흔적 하나하나가 신청자의 성향과 사상, 미국에 대한 충성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자료라는 입장이다. 국무부 관계자는 “SNS는 신청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창”이라며 “극단주의나 반미 정서, 불법이민 지지 등과 관련된 흔적이 있다면 심사에서 엄격히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비자 발급이 거부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인 브라질 출신 유학생은 SNS 계정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 교환학생 비자가 거부된 바 있다. 미 대사관 측은 “온라인 흔적이 전혀 없는 점이 비(非)이민 의도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WP에 따르면 내부 지침상 SNS 계정이 비공개 상태거나 활동 이력이 전무한 경우에도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 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SNS 계정을 아예 삭제하는 것이 나은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소셜 플랫폼 레딧과 더불어 각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계정을 삭제하면 오히려 의심받는다”, “정치 콘텐츠를 지우는 대신 ‘학술적 관심’만 남기자”는 등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는 모습이다.
다만 리처드 허먼 이민 전문 변호사는 “지나친 삭제는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활동만 남기되, 삭제 흔적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라고 조언했다.
SNS 재정비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를 겨냥한 기술 스타트업 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정리 스타트업 필로(Phyllo)와 레닥트(Redact) 등은 최근 ‘미국 유학, 과거 게시물 하나로 끝나지 않게 하라’는 문구를 내걸며 유학생 대상 마케팅을 본격화했다. 이들 업체는 SNS 내 정치성, 극단주의, 반미 정서, 불법 이민 옹호 이력 등을 자동으로 탐지해 삭제해주는 ‘AI 검열 도구’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세계적인 학술 교류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리사 곤잘레스 뉴욕대 이민법 교수는 “미국 유학을 가려면 자기 검열부터 필요한 현실은 미국의 도덕적 위신에 큰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