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감세 법안이 28일(현지 시각) 미 연방 상원의 첫 관문을 통과한 가운데, 이 법안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통해 해소하려는 무역적자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미 상원이 절차 관련 표결을 진행한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은 트럼프 대통령의 작년 대선 핵심 공약인 세금 감면 등을 실행하기 위한 포괄적 법안이다. 개인 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와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 트럼프 1기 때인 2017년에 시행했지만, 올해 말 종료 예정인 각종 감세 정책을 연장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법안이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를 비롯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하지만, 국가 부채는 수조 달러를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29일 보도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이 법안은 향후 10년간 연방 재정 적자를 3조4000억 달러(약 4638조원)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자금 차입 규모를 늘려야 하며, 이는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설명했다. 달러 강세는 미국산 제품의 가격을 높여 수출을 감소시키는 반면, 수입품 가격은 낮춰 수입 확대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68%를 소비가 차지하고 있어 타격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감세 법안의 부작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10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의 관세를 발표하며, 이 조치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의 만성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1975년 이후 매년 상품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해왔는데, 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벤 스테일 미국 외교관계위원회(CFR) 국제담당 이사는 “지속적인 무역 적자가 경제적 비상사태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법안을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 법안은 분명히 무역 적자를 더 오래 지속시키고, 그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감세 법안이 규제 완화, 에너지 생산 확대 등을 통해 누적 적자를 수조 달러 줄이고 국가 재정을 “더 건강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WP는 백악관이 감세 연장에 드는 비용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백악관의 분석이 “비현실적인 성장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재정 상태도 좋지 않다. 지난해 미국의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6.4%로,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 근접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감세 정책 시행 이후, 2016년 3.1%였던 재정 적자 비율은 2019년 4.6%로 확대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감세 법안이 시행될 경우 미국의 재정 적자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비상임 선임연구원 리처드 사만스는 “행정부가 글로벌 불균형을 줄이고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재정 정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내용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며 “거시경제 정책과 통상 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WP는 “(감세로 인한) 더 큰 재정 적자는 세계 무역을 재편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