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를 막고, 거리에 몸을 던져서 기필코 막겠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세기의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식이 열리는 이탈리아 대표 관광도시 베네치아가 들끓고 있다.

과잉 관광(오버투어리즘)에 지쳐 도시를 떠나는 청년들은 베조스 결혼식을 ‘도시를 돈으로 사려는 상징’으로 규정하고, 축복 대신 저지를 예고했다.

시위대가 13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와 로렌 산체스의 결혼식에 항의하는 시위 중 리알토 다리에 "베조스를 위한 자리 없음!"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DUSGKQSBTM

18일(현지시각)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베조스와 그의 연인 로렌 산체스는 오는 24일부터 3일 동안 베네치아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 행사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는 예산만 1000만달러(약 140억원)다. 연예 매체들은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킴 카다시안 등 초호화 게스트 200여 명이 이탈리아로 직접 날아와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베네치아 대운하에는 베조스가 소유한 127미터 길이 세계 최대 요트 ‘코루(Koru)’가 정박한다.

하지만 결혼식을 맞는 베네치아 청년들 생각은 다르다.

결혼식 반대 시위를 조직한 페데리카 토닌엘로는 CNN 인터뷰에서 “베조스는 결혼식 예상 장소인 미세리 코르디아에 절대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구명보트와 소형 보트로 운하를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베조스를 위한 공간은 없다(No Space for Bezos)’는 현수막을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리알토 다리에 내걸었다. 극비에 부쳐진 결혼식 장소를 추적해 ‘꺼져라(Get out)’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붙이는 등 사실상 결혼식을 훼방 놓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억만장자 제프 베조스가 이달 말 약혼녀이자 언론인 로렌 산체스와 결혼할 예정인 가운데, 결혼식이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한 술집에 "베조스를 위한 자리는 없다"라고 적힌 전단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분노하는 표면적 이유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고도 불리는 과잉 관광 때문이다. 과잉 관광은 특정 관광지에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현지인 삶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베네치아 구시가지 인구는 5만여명이다. 이 작은 구역에 매년 2500만~3000만명 관광객이 몰려든다.

팬데믹이 끝난 2023년에는 관광객용 숙박시설(침대 수 기준)이 처음으로 현지 주민 수를 추월했다. 숙박 수요가 뛰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원주민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대로 이어 살던 도심을 등지고 외곽으로 밀려났다.

살던 사람이 떠나고 관광객들만 남자 구도심에서 학교, 병원, 저렴한 식료품점 같은 필수 시설도 함께 사라졌다. 시위대는 “도시가 점차 거대한 테마파크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달 결혼식을 올리는 로렌 산체스(왼쪽)와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월리스 애넌버그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배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에서 취재진에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관광으로 연명하는 도시라면 그 정도는 필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베네치아 경제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베네치아 관광업 규모는 연간 23억 유로(약 3조 4000억원)로 추산된다. 구도시 시민 5만명 가운데 대부분이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하지만 그 과실은 주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탈리아 국립통계연구소(ISTAT)에 따르면, 관광업이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가치에도 불구하고 소득 분배 평등성에서 베네치아는 베네토주 내 꼴찌를 기록했다.

베네치아 전체 납세자 가운데 73%는 연소득이 2만6000유로(약 41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관광업은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고 소수에게만 부를 몰아주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게 시위대 측 주장이다.

13일 베네치아에 아마존 창업자 겸 CEO 제프 베조스와 언론인 로렌 산체스의 결혼식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베네치아시 관광 당국은 과잉 관광을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주말과 성수기 한정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 5유로(약 7500원)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입장료 부과 일수를 54일로 늘리고, 막판 임박 예약 시 입장료를 10유로로 올렸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사실상 관광객 수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 수는 오히려 예상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BBC는 “유럽 관광업이 스스로를 파괴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2024년 유럽 관광객 수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12%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과잉 관광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시위자가 물총을 쏘고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현지인 시위대가 이달 초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며 “관광객은 집에 가라”고 외쳤다. 바르셀로나시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2028년까지 모든 관광용 임대숙소를 없애겠다는 극약 처방을 내놨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그리스 아테네 역시 2025년부터 관광객용 단기 임대 허가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베조스 결혼식은 그 자체로 끝날 일회성 이벤트”라면서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베네치아 같은 도시에 광객 수를 제한하고, 관광 수익이 지역사회에 공정하게 분배되며, 주민의 삶과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