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불법이민자 개개인을 넘어 고용 기업까지 집중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2기 집권 이후 이민자 추방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제시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단속으로 ‘이민 억제 2단계’ 조치를 발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5월부터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등 남부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불시 현장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6월 첫째 주에만 조지아 주 애틀랜타 인근 농장에서 46명의 불법체류자가 체포됐으며 해당 농장주는 최대 100만달러(13억7030만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ICE는 ‘고용 현장 불법이민자 억제 특별 태스크포스(TF)’를 신설, 단속 인력을 1500명 이상 증원해 공격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ICE는 올해부터 각 지부에 하루 최소 3000명 체포를 목표로 한 내부 성과지표를 설정하고 단속 실적을 주 단위로 백악관에 보고하고 있다.
ICE는 최근 성명을 통해 “불법이민자 고용은 우리 법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의도적으로 이민법을 무시하고 외국인을 고용한 고용주에게는 벌금은 물론 형사 기소까지 병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조치로 미국 산업계 전반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농업계와 축산업계는 이미 비상대응팀을 꾸려 백악관과 협상에 나선 상태다. 전미농장연합(National Farm Bureau)은 성명을 통해 “실질적으로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감당할 인력이 미국 내에 없다”며 “현실을 무시한 단속은 농산물 공급망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식음료협회(CRA)도 “레스토랑 업계의 20% 이상이 불법이민자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민자 단속보다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인권 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민자 권익 보호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이번 조치는 체류자 신분에 상관없이 이민자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현장 단속 과정에서 인권침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주에는 ICE 단속 요원이 뉴저지의 한 베이커리에서 무작위로 직원들의 신분증을 요구하는 등 체포 과정에서 무력 사용이 있었다는 민원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정치권의 반응도 엇갈린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대응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국경 통제뿐 아니라 미국 내 불법 고용을 뿌리 뽑아야 진정한 국가 안보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조치를 두고 “경제 논리에 포장한 반(反)이민 정치쇼”라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민주당 상원 의원은 “이번 단속은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겨냥한 ‘정치적 희생양 만들기’”라며 “대화로 풀어야 할 시점에 또다시 단속과 처벌에 의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행정부 당시에도 ICE의 고용주 단속을 강화한 바 있으나 이후 조 바이든 집권 시기 규제가 완화되면서 단속이 실질적으로 중단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시작과 동시에 ‘국경 안보 및 내국인 고용 보호 행정명령’에 서명, 이민 규제 재강화를 공식화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미국 노동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민자 노동력에 의존해온 산업에서 단속이 강화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생산성과 고용안정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이민 통제와 노동 수요 간 균형을 맞추는 정책적 정교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