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글로벌 투자 은행들의 인재 유치 경쟁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 이후,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일본으로 투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력 수요가 높아진 영향이다.

지난 1월 일본 도쿄 중앙에 위치한 일본은행(BoJ) 본부 건물 위로 일본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11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홍콩, 런던 등 금융 허브에서 은행들이 무역 전쟁으로 시장이 흔들린 후 인력 감축에 나선 반면, 도쿄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일본으로 몰려들면서 금융 인력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일본 내 투자 은행 팀의 인력을 15% 늘리고 있으며, JP모건체이스는 자본 조달 및 금융 팀을 확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중 하나인 칼라일그룹은 30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일본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펀드를 운영하기 위해 10명의 전문가를 신규 채용할 계획이며, 뱅크오브아메리카, 베인 캐피탈, 블루아울캐피탈 등도 인력 충원을 진행 중이다.

일본 금융 업계에서 인력난이 심화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인플레이션의 재등장, 상대적으로 낮은 차입 비용, 엔화 약세 등이 겹쳐지며 일본 주식과 채권 거래가 급증하고, 외국인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운 워렌 버핏 역시 올해 들어 일본 5대 종합상사에 대한 지분을 늘리고 있다.

앞서 지난달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일본 재무성을 인용해 기록적인 자금이 일본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재무성에 의하면 지난 4월 중 해외 투자자의 일본 주식·채권 순매수액(단기채권은 제외)은 8조2130억엔(약 77조)으로, 통계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역대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일본 세븐일레븐 매각 등 대형 기업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에 집중했던 사모펀드들이 대출 금리가 낮고 매각 의사가 있는 기업이 많은 일본으로 투자를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 로펌 RPC의 일본 담당 부서장인 나이젤 콜린스는 “일본에서 돈과 일자리가 넘쳐난다”며 “향후 10년 동안 도쿄는 글로벌 금융 허브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호황으로 인력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투자 은행들이 일본에서 인력을 유치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다. 영어만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홍콩, 상하이 등 다른 금융 중심지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일본어가 필수적이다. 이로 인해 뉴욕이나 런던 등 다른 지역에서 금융 인력을 일본으로 보내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은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다른 기업의 인재를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독특한 인재 유치전도 벌어지고 있다. 은행들은 채용을 원하는 사람에게 도쿄 최고의 레스토랑 개인룸에서 저녁을 제공하고, 파티를 열기도 한다. 지난 1년간 대형 은행들의 러브콜을 받았다는 23세의 야마시타는 “막판에는 은행들이 매일 1시간 넘게 전화하고, 식사 초대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유명 사립대인 케이오대 3학년 재학생인 카토 유타는 “이미 인재 유치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투자 은행들의 인재 유치 경쟁은 일본 ‘버블 시대’인 1980년대를 방불케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학 졸업생들이 대여섯 번의 채용 제안을 받는 경우가 흔해졌다. 인문학을 전공한 한 일본 명문대 졸업생은 유럽 은행의 트레이딩 직무와 미국 은행의 영업직 제안을 받았다. 채용을 거부한 사람을 은행에서 몇 시간 동안 설득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난이 심화하자 임금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헤드헌터들은 지난해 채권 트레이더들의 급여는 평균 15% 상승했다고 추정했다. 한 채용 관계자는 투자 은행들은 지난 3년간 연봉을 연평균 10%씩 올려 제안하고 있고, 일부 상위 트레이더들은 100~150만 달러의 연봉을 보장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