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초부유층 억만장자들이 최근 상장 주식을 대규모로 매도해 약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를 현금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주식시장이 글로벌 증시를 앞서는 가운데 이들이 수익을 실현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틴 로렌존 스포티파이 공동 창업자. /X(엑스·옛 트위터) 캡처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 시각) 마틴 로렌존 스포티파이 공동 창업자가 지난 5월 말 자사 주식 100만 주를 6억6000만달러 규모로 매도하기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스포티파이가 2018년 상장된 이후 로렌존이 한 번에 매각한 주식 중 최대 규모다.

스페인 인프라기업 페로비알의 창업 가문 출신인 마리아 델 피노도 5월 27일 자사 지분 2억7100만 유로(약 3100억원)를 매각했다. 이는 9년 만의 최대 규모 매도다. 독일 바이오엔테크에 초기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둔 쌍둥이 형제 토마스와 안드레아스 스트루그만 역시 1억달러 규모의 주식 매도를 위해 서류를 제출했다.

이들은 여전히 각 회사의 주요 주주로 남아 있으며,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이들의 총 순자산은 약 490억달러(66조원)에 달한다.

유럽 증시는 올해 유로화 강세와 독일 정부의 확장적 재정지출 정책에 힘입어 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대표 지수인 스톡스600 지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18%포인트 앞지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지수 기준으로 올해 상위 10개 종목 중 7개가 유럽 기업이다.

로렌존, 델 피노, 스트루그만 형제는 이 같은 시장 강세 속에서 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의 주식 매도는 유동성 확보나 포트폴리오 재조정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UBS가 최근 발표한 초고액 자산가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많은 패밀리오피스(고액 자산가 자산관리 회사)는 오히려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다. 317개 기관 중 대부분은 포트폴리오의 3분의 1가량을 주식에 배정하고 있으며, 향후 5년간 선진국 주식 비중을 줄이겠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억만장자들이 단기간에 주식을 대거 매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확보한 현금을 사모펀드, 자선사업, 비상장 기업 등에 재투자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정책과 글로벌 정치 불확실성이 매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로렌존은 최근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북유럽 사모펀드에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델 피노는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등 미국 기술주에도 관심을 보여온 인물이다. 스트루그만 형제는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바이오엔테크에서 큰 수익을 거둔 후, 부동산 투자로 눈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